비만이 되기 전 식욕을 억제해 체중 증가를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식품첨가물이 EU(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았다. 약물이나 수술로 체중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 식품을 통해 포만감을 높여 과식을 줄이는 예방형 비만 관리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국 글래스고대와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공동연구진은 지난 2일(현지 시간) 자체 개발한 체중 증가 억제 식품첨가물 '이눌린 프로피온산 에스테르'(IPE·Inulin Propionate Ester)가 EU의 신규식품 목록에 등재돼 식품 원료로서 안전성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IPE는 치커리와 양파 등에 풍부한 천연 식이섬유 '이눌린'과 장내 미생물이 섬유질을 발효할 때 만들어내는 단쇄지방산 '프로피온산'을 결합한 흰색 분말이다.
EU승인에 따라 IPE는 유럽 시장에서 신규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식 승인 범위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시리얼바와 과일 스무디이며 연구진은 향후 스무디와 시리얼, 빵 등 다양한 식품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진은 15년 전 이 성분을 처음 개발했지만, 이눌린과 프로피온산이 위에서 분해되지 않고 장까지 도달해 작용하도록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식이섬유는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장으로 내려가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단쇄지방산은 장벽을 자극해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등 식욕 조절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GLP-1은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 음식을 덜 먹게 만드는 호르몬으로, 최근 비만치료제의 핵심 작용 약물이다.
다만 기존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이 호르몬의 작용을 인공적으로 모방하는 약물이라면, IPE는 천연 성분을 이용해 장에서 식욕 억제 호르몬 분비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진은 IPE가 프로피온산을 장의 특정 수용체까지 전달해 식이섬유의 포만감 유도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식욕 억제 호르몬 분비를 촉발할 만큼 충분한 단쇄지방산을 만들려면 하루 약 80g의 식이섬유를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식단에서 이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IPE는 하루 약 10g 섭취만으로도 식욕 조절과 체중 증가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40~65세 과체중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 IPE를 섭취한 참가자들은 GLP-1 호르몬 수치가 증가하고 식사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 뒤 IPE 섭취군에서는 체중이 늘어난 사람이 없었지만, 대조군에서는 17%가 체중 증가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확인된 주요 부작용은 고섬유질 식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가스 증가 정도였다고 밝혔다.
모든 임상 결과가 체중 감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20~40대 성인 270명을 대상으로 12개월간 진행한 또 다른 시험에선 두 그룹 사이 체중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IPE를 섭취한 그룹에선 신체 활동량 변화 없이도 근육과 골격 등 제지방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진은 IPE가 식욕 억제뿐 아니라 근육량 유지, 간 지방 수치 개선, 면역 및 대사 건강 개선에도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령대와 대상자에 따라 임상 결과가 엇갈리는 만큼, 실제 체중 관리 효과를 판단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공동 개발자인 더글러스 모리슨 글래스고대 교수는 "IPE는 체중 감량 주사제가 필요하게 만드는 느리고 지속적인 체중 증가를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리 프로스트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도 "많은 사람이 식이섬유 권장량에 크게 못 미치는 식사를 하고 있다"며 IPE가 체중 증가를 막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용화까지는 생산 규모 확대가 관건이다. 연구진은 IPE 상용화를 위해 '새티스페드'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수천t 규모 생산이 가능한 산업 파트너를 찾고 있다. 연구진은 이르면 12개월 안에 유럽 시장에서 IPE를 함유한 식품이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