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미국이 원자력협정('123협정')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내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글로벌 비확산 원칙을 훼손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협정은 미국이 취약한 핵연료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미국의 핵연료 공급망 실정과 사우디와의 원전 협력을 통한 전략을 짚어봤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국이지만 핵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우라늄과 농축 서비스는 해외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민간 원전 사업자들이 구매한 우라늄은 총 5592만 파운드였다. 이 가운데 미국산은 약 8%에 불과했고 외국산은 약 92%를 차지했다. 주요 원산지는 캐나다, 카자흐스탄, 호주, 우즈베키스탄 등이며 러시아산 우라늄 원료는 전체 구매량의 약 4%였다.
우라늄 농축서비스 부문에선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뚜렷하다. 천연우라늄은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가 소량(약 0.7%)만 포함돼 이를 핵연료로 쓰려면 원심분리기 등을 이용해 농축해야 한다. 2024년 기준 미국 원전 사업자들이 구매한 농축서비스는 약 1500만 SWU(우라늄 농축 작업량 단위)였는데, 미국 내 비중은 19%인 반면 해외 서비스는 81%를 차지했다. 여기서 러시아가 담당한 물량은 전체의 약 20%로 동맹국인 프랑스(18%), 네덜란드(15%), 영국(9%), 독일(7%)보다 많았다.
과거 미국은 세계 상업용 우라늄 농축 시장을 주도했지만, 신규 원전 건설 정체와 노후 시설 폐쇄, 후속 원심 분리기 설비 투자 지연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다. 미국 내 상업용 농축시설은 유럽계 다국적 기업인 유렌코(Urenco)의 뉴멕시코 공장이 유일하며, 미국 기업 센트러스 에너지(Centrus Energy)는 아직 시범 생산 단계에 있다. 반면 러시아는 1990년대 초 미∙소간 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해체한 핵탄두에서 나온 고농축우라늄을 희석해 약 20년간 미국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했다. 여기에 대규모 농축 설비까지 운영하면서 현재 전세계 농축 시장의 약 44%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24년 수입 금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수입 중단으로 원전이나 핵연료 기업 운영이 위협받거나 대체 공급원이 충분치 않을 경우 2028년까지 예외를 허용했다. 대러 의존을 끊겠다는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급망 내에서 이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미국 정부는 국내 농축 능력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올해 초 향후 10년간 기존 상업용 핵연료인 저농축우라늄(LEU)과 차세대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용 핵연료인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27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미국과 사우디가 체결한 123협정은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와 미신고 시설 사찰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의정서 등이 제외돼 논란이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123협정으로 원전과 농축시설 건설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된 사우디는 미국 원전과 핵연료의 수요처가 될 거란 평가다. 사우디는 아직 상업용 원전을 보유하거나 건설·운영한 경험이 없어 협정을 맺은 미국 기업 협력에 의존해야 한다.
특히 장기적으로 사우디가 핵연료 원료와 자본을 제공하는 잠재적 공급처로 발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 2020년 사우디 지질조사소(SGS)와 중국 국영 원자력 기업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사우디 내 총 3곳에서 9만 톤 이상의 우라늄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장관은 아람코 주최 콘퍼런스에서 "우라늄 판매를 포함해 모든 광물을 수익화하겠다"며 "원자로용 우라늄 연료 준비 과정에서 사용되는 옐로케이크(우라늄 정광)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디가 실제 우라늄 채굴과 정련에 성공한다면 미국과 우방국이 운영하는 변환·농축·연료 제조시설에 원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대규모 광산과 농축시설, 원전 건설에 필요한 초기 자본을 감당할 국부펀드와 정부 재정을 보유했다는 점도 강점이다. 미국의 통제 아래 현지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건설될 경우 이는 장기적으로 LEU, HALUE 등 안정적인 핵연료 생산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중국이나 러시아의 원전 생태계로 편입되는 것을 막는 전략적 의도도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협상 과정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을 포함한 핵연료주기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만약 미국과의 협상이 무산될 경우 사우디가 중국·러시아를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중국 국영 원전기업은 사우디 원전사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고 러시아 로사톰도 사우디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23 협정'은 사우디를 중국∙러시아 대신 미국과 동맹 중심의 원전 생태계에 편입시키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동 강국인 사우디가 중국∙러시아와 원자력 협력을 맺을 경우 동맹 외교의 한 축을 상실함은 물론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며 "미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안보와 지정학적 우위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사우디의 농축 설비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이를 100% 미국이 통제하는 블랙박스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