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연준'은 끝났다…"워시노믹스, 깜깜이 금리 시대 시작"

잭슨홀(미국 와이오밍)=심재현 특파원
2026.08.30 16:41

[잭슨홀 미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2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식에서 케빈 워시 신임 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스1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취임 후 첫 잭슨홀 기조연설을 두고 시장에선 단순한 금리 향방 공개를 넘어 지난 10여년 동안 통화정책을 지배해 온 '연준 규칙'의 전면 재편 선언이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했던 연준의 손길을 거두는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당분간 '조용하지만 매서운' 새로운 연준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포워드 가이던스' 폐기… 힌트 주던 시장 관리 방식 종료

워시 의장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연준의 '친절한 소통'이다. 워시 의장은 연준의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있도록 금리 경로를 미리 제시해 온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했다. 통화정책 결정에 앞서 구두로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는 대신 경제 지표와 금융시장의 반응을 직접 확인한 뒤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시장 입장에서는 연준의 입을 통해 다음 금리 방향을 미리 안내받던 편안한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워시 의장의 메시지는 단순히 말을 줄이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워시 의장은 국채 금리와 주가, 달러 가치, 신용 비용, 원자재 가격 등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형성되는 가격 신호를 정책 판단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연준이 신호를 보내 시장을 끌고 가는 방식에서 시장의 움직임을 읽고 후행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조용한 연준≠온순한 연준… 매파 본색에 9월 인상론 60% 급등

그렇다고 해서 '조용한 연준'이 온순한 연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워시 의장이 첫 잭슨홀 무대에서 드러낸 태도는 정반대였다. 워시 의장은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2% 목표치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내린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연준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9월 기준금리 인상을 직접 예고하진 않았지만 시장은 워시 의장의 이 같은 언급을 언제든 추가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신호로 해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워시 의장의 연설 직후 연방금리선물시장에선 9월 금리 인상 확률이 35% 수준에서 60% 안팎까지 급등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만기 2년짜리 미 국채 금리도 연 4.23%에서 4.32%로 급등했다.

'예고 없이 행동한다'… 시장 변동성 확대 '양날의 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잭슨홀 연설에서 드러난 '워시노믹스'의 핵심이 예고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선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연준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책 방향을 사전에 충실히 설명하고 기대를 형성했지만 워시 의장은 이런 과정이야말로 중앙은행이 시장을 조종하고 시장은 연준만 바라보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된 원인이라고 본다. 워시노믹스 체제에서 앞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 의장의 힌트에 의존하는 대신 물가·고용 지표와 금융시장 가격을 바탕으로 연준의 '반응 함수'를 추정해 내야 한다.

금융시장에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준 입장에선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지만 투자자들의 예측 난도가 극적으로 올라가면서 금리·환율·주식시장의 단기 변동성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고물가 지표가 발표될 경우 시장이 뒤늦게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한꺼번에 가격에 반영하며 극심한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시장 한 인사는 "워시 의장이 선언한 것은 결국 답안지를 미리 주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시장이 연준의 가이드를 따라가던 수동적 시대에서 연준과 시장이 서로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팽팽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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