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데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월 70만명에 육박한다. 기업의 인력 공백과 청년의 노동시장 이탈이 동시에 나타나는 가운데 정부는 이를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나 청년의 구직 의지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청년과 노동시장 사이의 연결이 약해진 데 따른 '미스매치'라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월평균 쉬었음 청년은 약 68만명에 달한다.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규모뿐 아니라 이들이 노동시장과 얼마나 멀어져 있느냐다. 쉬었음 상태가 장기화되면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지만, 1년 이내 일할 의사가 있는 청년 비중도 70~80% 수준인 만큼 상당수는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쉬었음 청년을 '준비 중 청년'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다. 통계상 하나의 범주로 묶이지만 취업 준비를 잠시 중단한 청년부터 장기간 구직활동으로 노동시장과의 거리가 벌어진 청년까지 상황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배경도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저성장에 따른 신규채용 감소에 AI(인공지능) 등 기술 변화가 겹치면서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진입 기회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간 미스매치까지 겹치면서 기업에는 빈자리가 남고 청년은 취업을 미루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28일 '청년일자리 회복방안'을 발표하며 맞춤형 지원을 첫 취업부터 경력·성장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으로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첫 취업 청년 중심으로 개편해 진로탐색·일경험·훈련·취업연결 등 상황별 지원 경로를 세분화하고, 2030년까지 첨단·청년 선호분야 전문인력 30만명 이상을 양성하는 게 골자다. 민간·공공부문 일자리 20만개 이상을 창출하고 청년창업가 10만명 이상을 양성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처럼 정부의 접근도 단순한 취업 알선에서 벗어나고 있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경험과 역량을 보완하고, 이를 기업의 수요와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2만3000명 규모의 일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 수요와 연계한 직업훈련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취지다.
특히 'K-뉴딜 아카데미'는 청년과 기업을 직접 연결하는 대표적인 사업이다.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대기업이 AI·반도체·금융 등 청년 선호 분야의 직업훈련에 참여하고 멘토링·기업탐방 등을 병행한다. 직무 역량뿐 아니라 실제 직장생활에 필요한 경험까지 제공해 교육과 취업 사이의 단절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청년 선호가 높은 K-뉴딜 아카데미 참여 대상을 올해 1만명에서 2027년 5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청년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지 않고 노동시장과의 거리와 준비 정도에 따라 지원을 달리한다. 장기간 미취업 상태가 이어지는 청년에겐 청년도전지원사업을 통해 상담과 역량 회복을 거쳐 직업훈련이나 취업지원으로 연계하고, 비교적 빠르게 취업 준비가 가능한 청년은 청년성장프로젝트 등을 통해 상담이나 단기 프로그램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창용 노동부 청년고용정책관은 "취업 의사나 능력이 있는 청년들이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원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청년에게 먼저 연락하는 등 찾아가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민주씨(가명·29)는 지난해 중소 광고대행사를 그만뒀다. 약 3년간 밤샘 근무가 기본으로 이어졌지만 포괄임금제가 적용됐다. 복지라고 해봐야 생일 휴가와 월 자기 계발비 5만원이 전부인 탓에 이직을 결심했다.
#.디자이너 이경민씨(가명·30)도 최근 1년 사이 외국계 테크기업 두 곳을 거쳤다. 해외 진출이라는 목표 때문에 상사의 폭언도 참았지만 부당한 업무 지시까지 반복되자 퇴사했다.
2030 청년층이 △낮은 급여 △부족한 복지 △경직된 조직문화 등을 이유로 중소·중견기업을 떠나고 있다. 경력을 쌓기 위한 '이직 사다리'로 활용할 수 있지만 장기간 머물기엔 근무 여건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청년들 사이에서는 직장 규모가 대출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엿보였다. 일각에선 이런 이유로 많은 청년들이 이직과 구직을 반복하며 결국 '쉬었음'(올해 1~7월 68만명)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청소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으로 28.7%를 차지했다. 중소기업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4.3%에 그쳤다. 2030 젊은층에게 중소·중견기업은 후순위다.
낮은 급여는 1순위로 꼽힌다. 장씨는 "일하는 시간과 강도는 대기업 못지않은데 신입 초봉은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며 "더 큰 회사로 옮기면서 만족도를 높이고 스펙을 쌓아 대기업으로 가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이름값이 있으면 집을 구할 때 대출을 더 잘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대학교 4학년 한모씨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이야기를 들으면 대기업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취업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경직된 조직문화도 청년들의 퇴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지방 중견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상대로 한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씨는 "첫 회사 대표는 본인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훈계를 일삼았다"며 "그다음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XX 같이 징징대지 말라'고 말하고 다른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해고를 통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중견기업도 임금뿐 아니라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을 개선해 청년이 '머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 온 '첫 직장은 대기업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이나 선진 기업 사례를 연구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어차피 들어와서 얼마 안 있다 나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홀대하고 유연한 직장 문화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부모 세대의 경험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개별 기업이 여건상 유인책 마련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중견·중소기업들이 AI(인공지능)와 로봇으로 생산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반복·위험 작업을 자동화하고 자동화하기 어려운 공정엔 외국 인력을 투입한다. 채용 단계에서도 AI로 적합한 지원자를 찾는 등 인력 공백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응이 다양해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에 위치한 주류기업 대선주조는 2021년부터 근로자들이 기피하던 공병 분류·운반 작업에 단계적으로 머신비전과 산업용 로봇을 도입했다. 이후 하루 처리량은 2배 이상 늘고 공정 불량은 66.7% 줄었다.
첨단 특수 제조시설 구축 전문기업 신성이엔지도 AI로 설비 이상을 감지하고 생산·품질 데이터를 실시간 관리하는 시스템 도입을 통해 시간당 생산량을 28.8% 늘리고 공정 불량률은 89.7% 낮췄다. 두 기업은 인공지능(AI) 등으로 실시간 원격제어가 가능한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K스마트 등대공장' 사업에 참여해 이 같은 성과를 냈다.
자동화가 어려운 제조현장에선 외국인력이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년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 애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을 고용한 중소기업의 82.6%가 채용 이유로 '내국인 구인난'을 꼽았고 48.2%는 외국인이 고숙련 직무를 담당한다고 답했다.
최근 채용시장에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지원자가 잘 모이는 직무는 무료 공고로, 채용이 어려운 직무는 AI 타겟팅 유료 공고로 대응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잡코리아의 클릭당 과금(CPC) 솔루션 '스마트픽'은 구직자의 직무·지역·경력 등을 분석해 적합도가 높은 후보자에게 공고를 먼저 노출한다. 이용 기업은 지난해 4분기 대비 올해 2분기 2.7배 늘었고 78.5%가 재이용 의사를 보였다.
다만 기술이 모든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생산직 공백을 자동화로 줄이더라도 설비와 AI 시스템을 운영할 전문인력을 새로 확보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디지털 전환과 AI 도입은 작업환경 개선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은 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며 "기업들이 근로자를 자산으로 바라보고 선제적으로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청년의 자산형성과 장기근속을 연계하고 일 경험과 자기주도 학습을 지원하는 등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