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약서 문구'가 가른 두 창업자의 운명

고석용 기자
2026.08.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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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제1차관이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스타트업벤처 캠퍼스 서울(SVC서울)에서 열린 벤처투자 계약문화 발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제공

같은 약속을 어겼는데 판결은 정반대로 갈렸다. 스타트업 식탁이있는삶과 알피는 2018년 '기한 내 상장(IPO)한다'는 조항을 담은 벤처투자 계약을 맺었다. 두 회사 모두 상장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법원 판결은 엇갈렸다. 식탁이있는삶의 김재훈 대표는 투자자에게 18억원을 지급하게 됐고, 알피의 박정규 대표는 투자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게 됐다.

판결을 가른 건 계약서다. 법원은 IPO의 성패가 아니라 계약서를 심판한다. 알피 계약서에는 '상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과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문구가 동시에 적혀있었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해당 문구가 '성실히 노력할 수단 의무'라고 판단했다.

한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같은 사건이어도 계약서마다 조항이 어디에 연결됐는지, 의무가 누구에게 부과됐는지, 옆 조항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다르다"며 "이에 따라 판결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서의 조항을 결정하는 건 사실 힘의 균형이다. 투자가 절실한 창업자 앞에서 계약서의 조항들은 날카로워진다. 반면 VC(벤처캐피탈)들이 몰리는 스타트업 앞에 놓인 계약서 조항은 무디다.

결국 창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건 판결이 아니라 재료인 계약서다. 마침 그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는 3년 만에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를 개정해, IPO 강제 조항을 '최선 노력 의무'로 바꿨다. 창업자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연대책임 제한도 강화했다.

방향은 옳다. VC업계도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강제력이다. 출자자(LP)들의 자금을 받아서 운용하는 VC 입장에서 눈치보지 않고 표준계약서를 준수하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중기부가 검토 중인 방안은 주목할 만하다.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 시 표준계약서 활용을 확약한 투자사에 가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더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표준계약서를 실익과 연결할수록 선의가 아니라 이익의 문제가 된다.

표준계약서 확산이 급한 건 지금이 적기라서다. 벤처투자 시장에 자금이 늘며 창업자의 협상력이 올라가 있다. 혹한기라면 달랐을 것이다. 돈이 급한 창업자들 앞에서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란 요구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의 균형이 바뀌기 전에 창업자를 지키는 계약 문화를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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