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걸어서 열린 길로 나선다. / 건강하고 자유로운 몸, 내 앞에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 내 앞에 길게 뻗은 갈색 길은 내가 선택하는 어디로든 이어진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의 '열린 길의 노래' 도입부다. 한국 시인이 이렇게 썼다면 어용시인이나 국뽕시인이라고 욕먹었을 게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 정수라가 '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노래하자 관제 애국가요라는 비아냥이 나왔지만, 휘트먼은 '국민 시인'이 됐다.
반면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1902~1967)는 '미국이 다시 미국이 되게 하라'에서 "탐욕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 때문에 농부, 노동자, 흑인("너희 모두의 종"), 가난한 백인, 인디언("땅에서 쫓겨난 붉은 남자")에게 미국의 꿈은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두 시인은 미국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냈지만, 개인의 자유와 대중의 연대가 민주주의 안에서 실현되기를 꿈꾸었다는 점은 한결같았다. 휴스조차 "미국은 내게 미국이 아니었다"면서도 "미국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원했던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아슬아슬하게 동거해온 미국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기술권력의 등장으로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정신의 증류수'라는 피터 틸(페이팔·팔란티어 공동창업자)은 에세이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2009)에서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면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양립 불가를 선언했다. 자유의 민주화 대신 자유의 자유화를 추구하는 셈이다.
일론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신념으로 내세우는 한편,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물질적 풍요에서 자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인류가 '보편적 고소득'을 누리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미친 좌파' 알렉스 카프(팔란티어 공동창업자)는 '기술 공화국'(2025)에서 기술과 국가의 협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고 주장한다. 자유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라도 이들은 기술로 국가권력에 맞먹는 힘을 갖게 됐다. 미국이 이란 침공 첫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표적을 때릴 때 팔란티어의 AI 시스템이 배후에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 스타링크 서비스 스위치 하나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도 있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이미 '자유를 위한 전쟁'의 시작과 끝을 국가와 함께 한다.
틸의 주장처럼 다수의 의사가 언제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다수결의 이름으로 소수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자유가 부족하다고 민주주의를 버리거나, 자유가 불평등하다고 자유주의를 폐기하는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내다버리는 꼴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세모글루는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2026)에서 '노동계층 자유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을 분산시키고 일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주체가 돼 공동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국가와 기술이 강해질수록 법치와 기본권, 사법 독립 등 자유주의의 제도와 규범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해야 한다. 기술혁신의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과제다.
총 224행에 이르는 장시 '열린 길의 노래'는 "나는 돈보다 소중한 사랑을 너에게 준다. / (중략) / 우리 살아있는 한 서로 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로 마무리된다. 시인에게 '열린 길'은 누구나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제 그 길을 기술 권력이 관리하려 든다. 심지어 인공지능은 길 안내를 넘어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대신 결정해준다. 자유민주주의가 다시 일어선들, 인간은 알고리즘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때 인간의 자유는 진짜 자유일까 헛것일까. 자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