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개편 '발표' 넘어 '실행'으로…정부·업계 "환자 체감 성과 내야"

정기종 기자
2026.09.03 15:08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대상 선정 앞둬…복지부 "신약 보상 아직 빈 곳"
업계, 적용 범위·속도 확대 요구…성과지표 설정 방식에는 온도차

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6 제17회 암참 보건의료혁신 세미나'에 참석한 주요 연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암참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발표된 약가제도 개편안이 실행 단계에 들어서면서 정부와 제약업계가 혁신 신약의 환자 접근성과 가치보상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의 성공 사례를 축적하고 신약 보상과 관련해 남은 과제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외국계 제약업계는 정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제한적으로 도입된 신속등재와 약가유연계약제의 적용 범위를 속도감 있게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준혁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7회 암참 보건의료혁신 세미나'에서 "제네릭(복제약) 약가 관리체계와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환경 조성은 어느 정도 큰 틀이 나왔고 이미 추진하고 있다"며 "신약에 대한 부분은 아직 빈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라며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한 후속 과제의 연구 결과를 업계와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개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한·미 양국 정부와 산업계, 보건의료 전문가 등 약 150명이 참석했다. '개혁에서 실행으로: 예측 가능한 보건의료 혁신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첫 번째 세션인 약가제도 개편을 비롯해 백신 생태계, 인공지능(AI)·정밀의료 관련 정책 과제 등의 세션이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약가제도 개편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올해 3월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제네릭·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 조정과 수급 불안정 의약품 공급 안정, 혁신 신약의 가치보상 및 환자 접근성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강 과장은 제네릭 약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혁신 신약과 중증·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네릭 의약품 관련 지출을 합리화해 확보한 재정 여력을 신약 접근성 강화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균형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도 대상 선정을 앞두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7월부터 8월 말까지 참여 기업과 약제를 공개 모집했다. 현행 약 240일인 건강보험 등재기간을 최대 100일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신청 약제 가운데 대체약제 유무와 질환 중증도, 재정 영향 등을 평가해 5개 이내를 선정할 예정이다.

강 과장은 사전 설명회와 공모에 다수 기업이 참여했다고 설명하며 "시범사업이 성공하려면 최종 선정된 약제가 등재까지 가는 과정에서 정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함께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성평가 관련 후속 과제는 현재 연구 단계로 추가 논의를 거쳐 구체화할 예정이다.

외국계 제약업계는 개편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적용 대상과 시행 속도를 높여야 실질적인 환자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혜영 한국BMS제약 대표는 약가개편의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제로 측정 가능한 성과지표와 제도의 속도감 있는 확대, 정부와 업계 간 소통을 통한 일관된 실행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한 실행의 시간이고 실질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국의 혁신 생태계에 대한 확신을 높일 수 있다"며 "신속등재도 소수의 희귀의약품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유연한 약가제도 역시 많은 항암제와 중증질환 치료제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한적인 시행이 길어질수록 혁신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의 혜택이 늦어지는 만큼, 적용 범위를 속도감 있게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과지표의 필요성에는 정부도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온도차를 보였다. 이 대표는 혁신 신약 지출 목표를 설정하면 정책 이행을 투명하게 점검하고 글로벌 본사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에게 한국 시장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 과장은 질환과 의약품, 환자군이 다양하고 한국이 선별등재체계를 운용하는 만큼 일률적인 지출 목표를 설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속가능성이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 없이 목표치를 설정하면 오히려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며 "한국 상황에 맞는 성과지표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정책실장은 약가개편이 제약사별로 엇갈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조 실장은 "어떤 기업은 수익성 향상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고 어떤 기업은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며 혁신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에는 기회가 되지만 제네릭 매출이나 다품종 구조에 의존하는 기업은 포트폴리오 재검토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며 "혁신의 가치와 환자의 접근성,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서로 선순환하는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변화가 환자와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세션에 이어진 두번째 백신 세션에서는 영유아 중심 예방접종체계를 전 생애 예방접종체계로 전환하고 국가예방접종 도입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AI·정밀의료 세션에서는 해외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검사실의 기술을 합리적으로 평가·수용하는 등 첨단 의료기술을 환자의 진단과 치료로 연결하기 위한 규제환경 마련 필요성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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