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의 부채 이자비용이 국방비를 뛰어넘는 이른바 '빚의 역전' 현상이 확산한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이 지난해 이자비용으로 지출한 재정만 2조달러(약 2673조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국가 GDP(국내총생산) 합계의 3.19%에 해당한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등 OECD에서도 '선진국클럽'으로 분류되는 10개국은 각국 국방비보다 많은 액수를 부채 이자로 낸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달 총 40조달러(약 5경3470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미국이 한 해에 내는 이자만 1조4500억달러로 집계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10년 후 이자비용이 2배로 증가하고 2047년 이후엔 사회보장 지출규모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전세계 채권금리가 올랐는데 이란전쟁이 발발하면서 인플레이션 충격이 커지자 금리 상승세를 부추겼다. G7(주요 7개국)의 10년 만기 국채의 평균금리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4%대에 도달했다. 최근 영국, 미국 등이 앞다퉈 신규 국채를 발행하면서 장기 국채금리는 거의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AI(인공지능) 경쟁격화로 빅테크(대형 IT기업)들이 회사채를 앞다퉈 발행한 것도 금리를 밀어올렸다. 미국 5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올해 새로 발행한 채권만 해도 2200억달러(약 295조원)를 넘긴 것으로 집계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전세계 정부와 기업의 부채는 총 300조달러(약 40경1040조원)에 이른다.
OECD는 회원국들이 올해 약 18조달러(약 2경4060조원)를 추가로 차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부채가 쌓이면서 금리가 오르는 요인이 되고 정부는 높은 금리로 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빚의 악순환'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했다.
이는 고스란히 각국의 재정압박으로 이어진다. 영국은 연간 이자로만 GDP의 3.6%인 100억파운드(약 18조1100억원)를 지출한다. 이 비율은 G7 가운데 영국이 가장 높으며 2030년 GDP의 약 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존 힐리 신임 영국 재무장관은 "채무이자가 정부부처라면 보건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부처가 되고 국방·내무·법무부를 합친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선 부채우려가 높은 영국·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을 지칭하는 'BIFS'라는 용어까지 새로 생겼다. 과거 그리스 등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를 'PIGS'라고 부른 것의 새 버전인 셈이다.
이처럼 이자부담에 허리가 휘는 상황에서도 각국 정부는 불안정한 국제정세 탓에 국방비 증액에 나섰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1조5000억달러로 증액할 방침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증액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도 2035년까지 핵심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높이기로 합의했다.
카르민 디 노이아 OECD 금융·기업담당 이사는 "이자부담이 재정정책에 직접적으로 제약을 가한다"고 분석했다. FT는 "금리인하 또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정부 재정이 회복되지 않는 한 유일한 대안은 세수증대 또는 지출삭감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