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스토리]월급쟁이 가슴은 숯덩이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적립식펀드에 넣어왔다. 조금이지만 적금도 붓고 있다. 월급통장에서는 매달 카드 값에 보험료에 빠져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담보대출을 끼고 집도 장만한 터라 매달 나가는 대출이자는 부담이 여전하다. 한여름 불볕더위에다 열대야로 고생하지만 에어콘은 켤 엄두가 안 난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할 판이다. 뛰는 물가에 기름 값이 무섭기 만하다.

월급쟁이들은 힘들다.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뛰는 물가에는 장사가 없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장만한 펀드통장엔 이미 큰 구멍이 난 상태다. 지금이라도 환매하자니 손해난 돈이 아깝기만 하다. 환매할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사면초가다.
집 값도 수상하다. 강남 집 값은 떨어진다고 하고 서울이나 경기 북부지역은 이미 많이 올랐다고 한다. 강남으로 가자니 더 떨어질 것이 두렵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너무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 넓은 집으로 옮겨야겠는데 갈 곳을 못 찾겠다. 게다가 대출이자 갚아나가는 것도 슬슬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월급쟁이들, 딜레마에 빠지다
월급쟁이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한 푼 두 푼 아껴 쓰고 한 푼 두 푼 투자하거나 저축하는 재미도 사라졌다. 아껴 쓰자니 물가가 안 도와준다. 펀드는 애물단지가 됐고 예금이자는 물가상승률을 못 따라가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인터넷 재테크 카페들에서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재테크 카페들은 펀드나 주식투자자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조언을 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투자자들의 하소연이나 한숨만 가득하다.
한 인터넷 카페 회원은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된다, 장이 하락했으니 매수할 때다라는 글마저 이제는 안올라 오네요"라며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지방에 사는 김경희(가명) 씨는 지난해 경차를 장만했다. 아이 통학 때문이었다. 외출할 때 차를 몰고 나가면 2차선을 타고 시속 40~50㎞로 달린다. 기름 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그가 놀란 것은 다른 많은 차들도 그렇게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여느 때 같았으면 대부분의 차들이 1차선으로 쌩쌩 달리고 느린 속도의 차들은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김씨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 200만원으로 빠듯하게 살고 있다. 남편 용돈 조금 주고 아파트 임대료, 공과금, 보험료 내고 딸아이 기저귀며 간식거리 사면 거의 남는 돈이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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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그가 들어놓은 펀드는 20%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900만원이 손해났다고 한다. 원금이 회복되면 환매할 작정이다. 차라리 정기적금에 넣어뒀으면 이자라도 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K모씨는 1년 전, 처음으로 펀드에 가입할 때만 해도 주위에서 '재테크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대로 괜찮다 싶은 펀드를 엄선했고 주위에도 그 펀드의 가치에 대해 설파하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 그때 들었던 4개의 펀드가 모두 마이너스 상태다. 평균적으로 -20%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펀드계좌만 들여다보면 가슴이 쓰리다.
그래도 M자산운용사의 인사이트펀드에 가입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펀드에 가입한 주위 사람들은 원금이 반 토막이 나게 생겼다고 아우성이다.

◆물가와 금리의 딜레마, 마이너스 금리시대
지난해는 증권과 펀드의 전성시대였다.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었으며 수십 퍼센트의 수익률은 보통이었다. 펀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펀드 가입자들의 가슴은 쓰리기만 하다. 20% 손해는 보통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예금에 가입한 사람들은 원금도 보장되고 많지는 않지만 이자도 받을 수 있으니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 이자도 실상은 믿을 것이 못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소비자동향물가상승률은 올 2월 3.6%였다. 지난해 2월에 비해 그만큼 올랐다는 얘기다. 4월엔 4.1%였고 5월엔 4.9%였다. 1년 만에 5% 가까이 오른 셈이다. 6월엔 5.5%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만약 지난해 5월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이었던 연 금리 5.5%의 1년 만기 정기예금에 가입했다면 얼마의 이자를 찾을 수 있을까. 비과세혜택을 받을 수 없고 세금우대 신청도 안했다면 이자에 대해 15.4%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5.5%에서 15.4%를 빼고 나면 4.653%가 남는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올 4월까지는 그래도 아주 약간의 남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5월 이후에는 마이너스가 된다.
은행 예금이자가 물가상승률을 따라오지 못한 셈이다. 형식적으로는 이자가 붙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가 돼 버리고 만다. 개미들은 이러나 저러나 손해만 보는 세상이 됐다.
◆펀드의 딜레마…환매도 추가불입도 고민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이 하락하면서 동반 추락한 펀드들이 투자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펀드 수익률이 -10%나 -15% 내외 정도라면 손실을 감내하고 환매할 만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지수 수준은 손실을 떠안기에는 너무나 큰 상황이다.
지난 6월 한 달간 국내 일반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0%를 넘어섰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절반 정도가 적립식펀드임을 고려하면 펀드에 가입한 월급쟁이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이 빠져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투자 전문가들은 시장이 빠진 지금이 저가로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자할 만한 시기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월급쟁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하다.
직장인 L모씨는 "지난 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꾸준히 적립식펀드에 돈을 넣어 왔다"며 "그런데 새로 넣은 돈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어진 듯 마이너스의 폭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추가불입을 하더라도 펀드통장의 잔고는 끝모르게 푹푹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는 추가불입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은 반등의 기회가 올 때까지는 그냥 참고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대세다. 어차피 어찌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와버렸다는 포기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분위기다.
◆부동산의 딜레마…집 사도 될까
직장인 K모씨는 85㎡ 정도 크기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동안 돈도 조금 모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도 값이 오르기도 해 좀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다. 그러나 몇달째 옮겨갈 집을 알아보기만 할 뿐 선뜻 계약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강남이나 분당, 용인에서는 집값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모르는데 투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산이나 의정부, 서울 북부지역 등은 그동안 집값 상승이 있어 왔던 터라 왠지 비싸게 살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분양가상한제가 본격 실시되기만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최근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아닌가 두렵다. 정부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완화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새 집을 청약한다고 해도 웬만큼 저렴한 집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광교신도시나 인천 청라지구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 지역 역시 좋은 가격으로 집을 장만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재개발이나 재건축 유망지역으로 가자니 투자시기가 너무 오래 걸리고 웬만한 곳에서는 이미 값이 많이 올라버렸다.
K씨는 고민만 늘어갈 뿐 선뜻 결정을 못하고 더운 밤을 그렇게 지새 고 있다.
◆"답이 없다…유동성 확보해야"
투자 전문가들도 난감한 표정이다.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멀리 내다본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지금보다 좋았을 때 고객들에게 환매를 권유했던 것이 주효했다며 안도하는 표정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강남투체어스 PB팀장은 "CMA나 MMF, RP 등에 자금을 넣어놓고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주식시장이 다시 반등할 때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지금은 준비의 시기임을 강조했다.
지금 당장 투자하기보다 증시가 다시 좋아질 때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투자에 나서기 위해 자금을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자금이 묶여 있으면 안되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동성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충고다.
박 팀장은 "1년 이상 만기일까지 꼬박 넣어둬야 하는 정기예금은 자산의 아주 일부만 넣는 것이 좋다"며 "정기예금은 중도해지 시 1~1.5% 정도의 이자밖에 받지 못하므로 투자의 적기가 찾아왔을 때 자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도 아직 환매 못한 펀드에 대해서는 딱히 대책이 없어 보인다는 뉘앙스다.
박승안 팀장은 "지금은 펀드를 환매할 시기는 놓친 것 같다"며 "환매하지 못한 펀드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반등하는 시기에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해 '펀드의 굴욕'에는 답이 없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