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통신망 기술검증 논란 재가열...원칙과 소신에따른 결정 필요

국가재난안전망(재난망) 구축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기술방식 검증결과가 공개됐지만 기술 적합성과 망구축 방식, 사업성을 두고 사업 참가자, 정부 부처간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연내 기술결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각종 대형 재난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취지로 시작된 재난망 사업이 수년째 소모적 논쟁으로 허송세월하고 있어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정안전부는 재난망 기술방식 및 망구축 방식에 대해 이견조율이 어려워지자 국무총리실로 업무이관을 요청했다. 하지만 총리실은 재난망 기술의 복잡성과 함께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재난망 관련 연내 기술결정은 물건너간 셈이다.

재난망 사업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기술 타당성 검증 의뢰를 받은 지난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지난 10월 20일 공개토론회를 열고 테트라(Tetra)와 와이브로(Wibro), 아이덴(iDEN) 3개 기술중 아이덴을 제외한 두 기술을 적합기술로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덴 제안사인 KT파워텔은 "평가기준의 형평성 결여"를 문제삼아 반발했다. 또 와이브로 기술을 채택할 경우 방통위가 700Mhz 대역 주파수 여유가 없고, 자가망을 구축할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며 난색을 표했다.
결과적으로 감사원이 문제를 삼은 재난망 표준기술은 테트라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이와관련, 업계에서는 모호한 기준과 검증결과가 논란을 심화했다고 지적한다. 타당성 조사결과 복수의 기술을 발표한 것은 물론, 평가자체가 기능성 위주로 이뤄지면서 정작 통신 안정성에 대한 검증은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재난망을 수년째 연구해온 김사혁 KISDI 연구위원은 "이번 검증결과는 고속철도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테제베와 신깐센을 모두 발표한 것과 같다"면서 "재난망은 긴급상황을 염두에둔 만큼 그룹통화와 같은 특정 기능은 물론 통화품질과 안정성이 중요한데도 이에대한 평가가 없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꼴"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성 논란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테트라와 와이브로는 새로 망을 구축해야하는 만큼 각각 9000억원, 1조원 가량 투입된다. 반면 상용망이 이미 구축된 아이덴은 5000억원(10년 사용료) 이하로 절반수준에 불과해 경제성이 월등하다. KT파워텔이 "과거 재난망 사업이 경제성때문에 발목잡힌 만큼 여기에 가점을 줘야하는 게 아니냐"며 반발하는 이유다.
사업성 논란은 자가망(사설망)이냐 상용망(공용망)이냐의 논란으로 이어진다. 테트라와 와이브로 기술을 채택할 경우 자체망 구축이 필수적인데, 이는 현행 전기통신사업법과 배치된다. 법규정상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망은 목적외 사용이 불가능하다. 재난망은 말그대로 재난시에만 사용하라는 뜻으로, 결국 1조원가량 투자한 망을 평시에는 놀리게 돼 국민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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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대해 재난망의 취지에 맞게 법을 개정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적지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통신사업상 자가망 용도를 제한한 것은 무분별한 상업성과 통신망의 남용을 막기위한 목적인데 국가 인프라인 재난망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경찰이나 소방서의 평시 순찰이나 화재진압 활동이 재난과 무관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전세계적으로도 테트라 기반 자가망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미 구축된 상용망을 이용할 경우 보안성 논란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역시 회선분리 등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실제 해외서도 상용망인 아이덴(iDEN)을 재난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특정 기술 자체가 아닌 재난통신망이라는 목적에 충실할 것이냐 아니면 경제성을 더 우선시할 것이냐에 대한 원칙과 판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결정이 10년 가까이 지연되면서 치안이나 소방 현장은 물론 지하철 운전사조차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는 기형적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면서 "원칙없는 행정에 사업자간 논쟁이 가중되면서 혼선이 초래되는데 이제 누군가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지적했다.

◇ 국가재난안전망=재난망 사업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이후 착수돼 2005년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산림청, 지자체의 무선망을 통합하는 '통합무선통신망 구축사업'으로 본격화됐다. 2007년에는 경찰과 소방기관이 수도권지역 시범사업으로 이를 도입했다. 그러나 2008년 감사원이 당시 표준기술인 테트라의 기술독점과 경제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오면서 사업이 백지화됐다. 2009년 각종 재난사고가 이어지면서 사업규모를 축소해 재개하기로 했고 올들어 행정안전부가 기술방식 선정공고를 다시 내면서 재가동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기술적합성과 망구축 방식을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