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안정에 목숨걸고, 변화에 인색한 소시민을 깨우치다

이철경 시인,문학평론가
2015.02.14 05:25

[Book]'보통씨의 특권'…'행성 E2015'에서 온 타전

-친애하는 이진우 형에게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형이 보내준 사진 속에 거제도 저구마을의 붉은 동백이 화사하게 피었더군요. 꽃을 보며 조만간 남쪽으로부터 올라올 무지개 같은 봄소식이 얼마나 반갑던지요.

입추도 지났건만 여전히 서울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을 잊을까, 영하 12도의 찬바람만 불어옵니다. 이 추운 계절이 가면 이내 따뜻한 봄이 오겠지요. 남쪽에는 이미 꽃들이 만개하고 여기저기 시골 처녀의 마음처럼 부드러운 흙이 봄바람에 한껏 부풀어 오르겠네요. 푸른 새잎을 보듬기 위한 분주한 대지의 아지랑이도 볼 수 있겠지요.

형을 처음 만났던 그때가 아스라합니다. 시 창작 모임에서 우연히 안지도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때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젊었지요. 피맛골에서 값싼 밀주와 고갈비 반쪽을 시켜놓고 젊은 혈기로 무장했던 함께한 기억들이 새롭습니다. 인사동 수도약국 감나무 아래 둘러앉아 밤새워 술잔을 비우며 시를 논하고 노래를 부르며 젊은 날의 열정과 부조리에 대한 난상토론은 언제나 빛나는 청춘이었죠.

지금은 빛의 속도로 경제에 많은 변화가 왔지만, 사회적 함의나 정치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현실에서 여전히 우리들의 추억은 봄바람의 아지랑이처럼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젊은 날의 추억은 저 멀리 사라지고 함께했던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형 소식도 바람이 전해주는 말로 간간이 들을 뿐,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습니다.

장편소설 ‘적들의 사회’,‘소설 이상’, ‘메멘토모리’등을 발간하며 세상에 얼굴을 보일 때 형이 시를 쓰지 않고 소설로 전향했구나, 생각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강산이 한번 변하자, 시골로 낙향하여 따뜻한 남쪽 마을로 칩거하더군요.

복잡하고 혼란스런 세상사 다 잊고 “산골로 가는 것은/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고 읊었던 백석 시인의 생각처럼 형 또한, 시골로 떠나며 자본주의에 폐해에 함몰된 온갖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을 보았지요.

그러나 시인은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꿈꾸는 종족이기에, 항시 현실의 부조리에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떠났으나 멀리 떠날 수 없는 배처럼 여전히 형은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물질 만능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적 빈곤함에 휩싸인 안타까운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분개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이번에 12여 년 만에 나온 형의 세 번째 시집 ‘보통씨의 특권’(시인동네)에서 한국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아직 꺾이지 않았음을 생각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원시의 밥을 먹고/포스트모던하게 핸드폰을 들고/중세의 회사에 나가/근대적 논리로 일하다가/현대의 술집에서 한 잔하고/본능의 잠을 자는 나날들/돌아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습관들이/만들어내는 안정된 생활이/대사와 동작을 반복하는 코미디처럼 느껴질 때/한번쯤 돌아볼 일이다/월급명세서 위에서 2차원 활자로 살아가는 자신이/11차원 우주를 뛰어넘나드는 자연스런 시간과/상상 너머 공간 어디쯤 있어야 하는지/안정에 목숨 걸고 변화에 인색한 생명이/어느 행성에서 번성하는지/혹은 멸망하였는지(행성 E2015)

위의 시를 읽으며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아무 의미 없이 길들어져 있었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도시문명에 길들고 조직에 길들어져 한정된 정보와 표피적인 미디어에 노출되어 더 이상 꿈은 허용치 않은 입력된 정보에 의해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 되돌아보았습니다.

“안정에 목숨 걸고 변화에 인색한 생명”이 되어 불편한 이슈에는 애써 눈 돌리는 소시민으로 헐떡이며 살아가지요. 나 또한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길들기를 원하듯, 그러나 형이 숨 막혀 하는 “상상 너머 공간 어디쯤 있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한 이번 시집에서 다시 한 번 나를 깨우칩니다.

‘25시’의 작가 콘스탄트 비루질 게오르규가 말했듯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현실의 부조리에 숨 막혀 하고 세상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인이고자 했습니다.

형의 이번 시집을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했던 현실 문제에 대해 항변하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출판기념 행사 때 바보주막에서 말아 피던 담배를 내게 건네며 너무 오른 담뱃값에 힘들어하던 가난한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디 그 누구도 아프지 않고 시로써 위로받는 행복한 사회가 되길 원하며 형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상이 매화꽃처럼 만발하길 우리 모두가 기대합니다.

◇약력=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시 전공)졸업, 《목포문학상》시 평론 수상, 계간《발견》 시 신인상, 《포엠포엠》시 평론 신인상, 시집『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북인, 2013년. poem@korea.ac.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