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전차를 불태운 조선인…폭동은 왜 일어났을까

방윤영 기자
2015.02.14 06:13

[book]'사물로 본 조선'…전차, 의복, 태극기 등에 깃든 조선시대 이야기

/사진=글항아리 제공

조선의 거리를 ‘근대적 풍경’으로 변화시킨 것은 전차의 개통이었다. 거리 양쪽에 좌판을 벌여 좁고 복잡하던 종로거리는 전차 개통 후 17m 폭으로 넓어지고 도로도 반듯하게 포장돼 근대적 신작로로 변했다. 하지만 조선 시민들은 전차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차는 시민들의 ‘발’이 되기보다 민생을 고려하지 않은 근대문물이었기 때문이다.

전차 개통 9일째인 1899년 5월26일. 파고다공원 앞에서 어린이가 전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인 운전사는 뺑소니를 치려 했고 이에 시민들이 운전사를 끌어내 폭행하고 차량 한 대를 불태웠다.

1903년 9월30일에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철길을 지나던 14세 소년이 전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났다. 이때도 운전사가 줄행랑을 쳤는데 흥분한 시민들이 전차 2대를 파손하고 일부는 한성전기회사 사옥에 난입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조선 시민들이 교통사고에 폭동에 가까운 반발을 일으킨 이유는 당시 경제상황 때문이었다. 1880년대 개항 이후 외세의 침략과 높은 물가, 계속된 가뭄에 민중의 삶은 피폐했다. ‘날씨가 가무는 것은 전차가 달리면서 공중의 물기를 모두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유언비어가 나돌 정도였다.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나 오히려 민생을 어지럽혔다는 원성이 나왔다. 이처럼 조선시대 전차에는 경제상황이나 사회발달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도입한 서구문물이 당시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이 책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11번째 규장각 교양총서다. ‘사물로 본 조선’을 주제로 삼아 사물에 얽힌 조선의 역사와 사람들의 애환 등을 풀어낸다.

조선조 500여년 동안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1만400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과거급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조선 양반들이 좁은 합격의 문을 뚫기 위해 어떤 학습용 도구들을 사용해 공부했는지 등도 소개한다. 이외에도 조선 사람들의 욕망과 고민이 서린 의복 이야기, 국권수호의 표상이 된 태극기의 탄생을 둘러싼 설 등을 다룬다.

규장각은 조선의 22대왕 정조(1776년)시대에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왕립학술기관이다. 135년간 기록문화와 지식의 보고지만 1910년 왕조의 멸망으로 폐지된 이후 ‘고문헌 도서관’으로 겨우 지탱해왔다. 규장각은 창설 230년이 되는 2006년 한국문화연구소와의 통합을 통해 학술연구기관으로서 기능을 되살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물로 본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펴냄, 364쪽/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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