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르네상스 시대, 뒷골목 10대 소녀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방윤영 기자
2015.04.04 06:11

[따끈따끈 새책]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사진=북항아리 제공

'문화적 황금기'이자 인간성 회복을 중요시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피렌체 10대 소녀들은 그늘에 갇혀 있었다. 1544년 피렌체에는 극심한 기아와 열병으로 부모를 잃거나 버림받은 소녀들을 위한 보호시설인 '피에타의 집'(혹은 연민의 집)이 설립됐다. 이곳에 있던 526명의 소녀들 중 절반 이상이 살아남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르네상스 시대에 여성, 특히 가장 열악한 지위에 놓여있던 하층 소녀들은 인간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피에타의 집 소녀들은 자신들의 보호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해야 했다. 기부금만으로는 쉼터가 운영될 수 없었다. 피에타의 집은 저임금의 노동집약적인 견직물 제조업 공장으로 변했다. 소녀들은 물레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았다. 피에타의 집 소녀들은 한 해 500Kg의 실을 뽑았는데 이 양을 만들려면 누에 30만 마리를 길러야 했다.

견직물에 종사하는 일반 노동자는 많은 수입을 올렸으나 피에타의 집 소녀들에게는 예외였다. 가장 고되지만 가장 값싼 임금으로 일하도록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 소녀들은 굽은 자세로 일했고 폐결핵이 만연했다. 비좁은 침대 생활로 피부병이 전염됐다.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소녀들은 밥도 얻어먹을 수 없어 영양상태도 좋지 않아 쓰러지기 일쑤였다.

소녀들은 노동력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착취당했다. 과도한 노동으로 병에 걸린 소녀들은 '처녀들의 병'에 걸렸다고 규정됐다. 의학은 소녀들이 성관계를 맺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렸다. 이와 함께 남성들은 처녀와 성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성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여성성(姓)의 인식은 어린이 강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성병과 낙태 등으로 피에타의 집 소녀들이 죽음에 몰리게 된 것이다. 소녀들의 성은 보호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권력자들의 편의에 따라 사용될 수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 사학과 교수인 니콜라스 터프스트라(Nicholas Terpstra)는 '피에타의 집 소녀들의 사망률이 왜 비정상적으로 높은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 페렌체의 성과 노동, 권력과 종교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 답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문화의 황금기'라는 거대 서사에 가려졌던 르네상스 시대의 어둡고 황망한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일부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인간 본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인간 존재를 재산 이상의 어떤 것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는 역설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지음. 임병철 옮김. 글항아리 펴냄. 436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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