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을 맞아 다시 만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왼손에 스틸 애플워치를 차고 있었다. ‘얼리어답터’(새 제품을 먼저 접하는 구매자)냐고 묻자, 김 장관은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어서 한번 접하면 이것저것 다 분석하는 스타일”이라고 웃었다.
디지털과 동승하는 문화가 대세인 요즘 시각에서 보면 그는 최적의 요인들을 구축하며 한발 앞서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1년 전 취임 당시 ‘게임 폐인’이라며 자신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한 김 장관은 요즘 취미생활로 하는 게임이 있느냐는 물음에 모바일 축구게임 ‘톱11’을 즐긴다며 “이런 거 얘기하면 와이프한테 혼난다”고 다시 쑥스럽게 웃었다.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첨단 디지털 기술을 문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모두 그의 열린 호기심과 개방성 덕분이다.
지난 1년, 그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기획과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7년 완성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도 이제 2단계로 접어들었다. 오는 11월 개관하는 문화창조벤처단지는 융합벨트 사업의 2단계로 젊은 창작자들이 새로운 융합 문화를 위해 담금질 할 수 있는 창조 실험 센터다. ‘문화가 있는 날’ 역시 지난해 1월 첫 시행 이후 1년 6개월 만에 2배 이상 프로그램이 증가했고, 인지도도 19%에서 40.2%로 크게 늘었다.
김 장관은 자신에게 주는 지난 1년의 성과 점수에 대해 “내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실적이라는 건 있죠. 제가 와서 한 일 중 몇 가지가 있는데, 정부상징체계나 국가브랜드와 관련된 것들이 그래요. 그나마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한마디로 국가를 디자인하겠다는 것이다. 홍익대 미대 교수 시절, 그는 회사를 위해 주로 디자인했지만, 지금은 국가를 위한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날만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국가기관이 쓰는 로고의 단일화부터 ‘대한민국’의 브랜드화까지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요.”
지난 2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김종덕 장관은 어떤 질문도 막힘없이 대답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취임 1주년, 당시를 되돌아본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전화받았는데, 처음에는 ‘왜 디자이너인 내게 연락이 왔지?’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에 뜻이 있었던 적도 없고, 대선 캠프와도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가 ‘계획하다’라는 의미가 있기에 큰 범주에서 보면 국가를 위한 디자인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래서 수락했다.”
-‘국가를 디자인한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 같은 사람은 수렁에 빠진 회사를 아이폰 하나로 확 끌어올리지 않았나. 커뮤니티를 위한 디자이너들은 판자촌을 벽화로 꾸며 사람들이 찾아가고 그리워하는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국가도 디자이너의 손길로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회사를 위해 디자인하는 사람은 돈을 제일 잘 벌지만, 세계나 인류를 위해 디자인하는 이들은 돈 버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나라를 위한 디자인은 결국 자신의 문화를 어떻게, 얼마만큼 전파하느냐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집권 후반기 국정카드로 꺼내들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4일 국무회의에서 “집권 후반기 문화융성의 틀을 강화해 우리의 찬란한 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데 매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 ‘광복70년 경축사’에서는 “대한민국이 도약하기 위해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두 날개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문화재정도 연도별로 늘고 있다. 정부재정 대비 점유율이 2012년에는 1.41%밖에 안 됐지만 올해는 1.63%로 증가했고 오는 2018년까지 2%를 달성하겠다는게 정부의 목표다.
-박근혜 정부의 지향점이 갈수록 ‘문화’로 쏠리고 있다.
“대통령이 원칙주의자라서 그렇다. 솔직히 나는 대통령을 좋아했지만, 팬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일하면서 본 대통령은 ‘옳은 일이고 원칙이다’라는 생각을 하면 절대 돌아가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집권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경제 지표처럼 몇 퍼센트 수치로 딱 나올 수 있는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삼았을 때, ‘손해 볼 걸 지표로 삼았다’ 싶었다. 그러나 당장 실적 날 일만 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기반을 닦아 후대의 성장동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로켓 발사할 때 1단계 추진체가 ‘산업’이었다면 2단계는 ‘문화’라는 것이다. 나는 문화 분야에서 평생 살면서 ‘왜 이걸 다들 몰라줄까’ 답답해 하던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기에 지금의 방향이 맞다고 본다.”
-추진 중인 국가브랜드 ‘참 대한민국’은 국가주의적 사관에 기댄 측면이 있지 않은가.
“이 브랜드는 우리 국민이 가진 DNA를 말한다. 이제는 서로 다른 거 말고, 같은 걸 찾아보자는 작업이다. 차이를 찾는 게 비판이론의 접근법이었고 특히 진보측 논조는 ‘너와 나의 차이’를 찾는 것이었다. 지난 두 번의 진보정부를 거치면서 이런 현상이 정말 심화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고 지역·계층 등으로 더 세밀하게 나눠진 것 아닌가. 그런데 사실 우리가 같이 살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는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아 치고받으면서도 사는 거다. 그렇기에 내부적으로 우리가 가진 동질성을 찾자는 것, 이것이 국가브랜드의 핵심이다. 우리 안에서 정체성을 찾으면 해외에서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다’라고 소개하기가 훨씬 낫지 않을까.”
-그래도 국가가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한 채 하나의 ‘주의’를 만들 위험은 없는가.
“과거에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 해외를 관점의 중심에 놓고 ‘다이나믹 코리아’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우리다움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왔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치유될 거라고 믿는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국가 상징을 하나 떡 하니 만들어놓고 ‘이게 대한민국이니 따르라’ 이렇게 할 계획은 전혀 없다.”
김 장관은 국가브랜드 작업과 함께 모든 부처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로고와 글자체를 통일하는 작업인 ‘정부상징체계’ 작업도 준비 중이다. 공문서인지 사문서인지 구분이 안되는 형식을 3년 내 정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화융성’의 개념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미감의 측면이다. 국민이 가진 평균적인 미감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문화융성의 개념이다. 유럽 거리들을 보면서 ‘우리는 저렇게 못 하나’라고 생각해 시범적으로 간판 교체사업을 해 봤는데 2년 지나자 다 원상복구됐다. 그만큼 미감의 수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의미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국민 전체의 미감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단시간에 우리나라를 아름답게 디자인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미감을 끌어올리는 일은 국가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장사가 안 되는데 작은 지역에서 누가 미술관을 짓고 공연을 하겠나. 작은 마을에 정부와 지자체가 돈을 대가면서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민들 사이에 문화적인 격차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 지방은 서울처럼 돈과 시간만 있으면 영화나 연극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 1기 목표와 결과를 놓고 볼 때 만족과 불만족을 얘기한다면.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자리잡게 한 건 굉장히 잘 했다고 본다. 다만 인문학 부흥이라는 목표에 대한 결과는 조금 미흡했다고 본다. ‘이야기 할머니’라는 프로젝트 통해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국민 사이에서 확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국정 1기가 틀을 잡는 시간이었다면, 2기는 1기에 구상한 여러 가지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실적을 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뜬구름 잡듯 말잔치만 하면 안된다. 그래서 곧 발표 예정인 2기 문화융성위원 구성은 교수들보다는 대부분 현장경험이 많고 실무에 능한 젊은 사람들로 꾸릴 예정이다.”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국민의 벽은 아직 높은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 신장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이 성장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문화를 향유하는 국민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건 처음 밝히는건데, 사실 좀 더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넘어 마지막 주 전체를 ‘문화가 있는 주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일부 고궁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에 외국인 등용에 대해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디자인의 경우 글로벌 경쟁을 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 미술의 경우 화랑 중심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원론적인 차원에서 생각했는데, 여러 해외 미술관에 가서 관장들을 만나보니 실제 외국인을 기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국립미술관 관장들이 다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 나라 사람을 안 쓰냐’고 물었더니 관장들이 오히려 ‘왜 이 나라 사람을 써야 하느냐’고 반문하더라. 능력이 없는데 특정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오는 사람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김 장관은 정부가 기존에 해오던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라고 말했다. 그가 보는 문화융성의 핵심은 전통 가치의 재발견, ‘손맛’의 한계에 이른 예술의 디지털화,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공존 등이다.
“일본 백화점에서 가장 고가에 팔리는 제품은 공예품들이에요. 우리 공예가 일본의 그것보다 못하지 않은데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받고 있잖아요? 또 예술은 손끝이 닿는 디테일의 작업으로 흔히 평가받지만, 기초예술에 디지털을 얹어 둘의 조화를 모색하는 툴을 세우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문화융성은 바로 이런 양비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