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25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 현에 위치한 하미 마을 주민들은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마을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던 한국군들은 주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빵을 또 얻을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군이 모이라는 장소에 간 하미 마을 주민들의 예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전개됐다.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한국군들은 총과 수류탄, 유탄발사기를 동원해 모인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총성과 폭발음이 2시간여 이어졌고 주민 135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한민국 해병대 소속의 청룡부대가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하미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문제는 젊은 남자들이 마을을 비웠던 상황에서 숨진 주민들이 대부분 아이들과 여성, 노인이었다는 것. 당시 하미 마을은 미군의 전략에 따라 안전마을로 분류됐기에 주민들도 미군과 한국군에 대해선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학살이 벌어질 당시 숨어있다가 살아남은 소수의 마을주민과 다른 지역에서 온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 게릴라들은 마을로 들어와 훼손된 시신들을 한꺼번에 모아 묻었다.
하지만 다음날 한국군이 불도저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고 무덤과 미처 묻지 못한 시신을 깔아뭉개며 밀어버렸다. 생존자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지만 민족해방 전선 지역의 출신이란 이유로 난민촌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에서 지내야 했다.
2000년 10월,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는 미국 사료관 문서관리소로부터 받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하던 우리 국방부의 공식입장을 반박한 것.
보고서엔 하미 마을을 비롯해 다른 마을에서의 학살이 자세히 표현된 묘사와 충격적인 사진들이 포함됐다.
같은 해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하미 마을에 3만달러를 기부해 위령비를 세우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을 과장없이 서술한 비문을 지워줄 것을 요구해 현지민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학살의 참상을 표현한 위령비의 비문은 수정되지 않았지만, 비문 위에 연꽃 문양이 그려진 대리석을 덧씌운 상태로 제막됐다. 하미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월24일을 전후로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다음은 위령비에 새겨진 비문 내용.
1968년 음력 1월 24일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를 기리다
1968년 이른 봄 음력 1월24일 청룡병사들이 미친듯이 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가구 중 135명이 죽었다. 피가 이 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과거의 전장이었던 이곳에 이제 고통은 줄어들고 있고 한국인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그리하여 용서의 바탕 위에 이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