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삼복더위가 끝날 무렵, 우리에게 반가운 날이 찾아온다. 압제에 엎드렸던(伏) 이들도 주권을 되찾았던(復) 복(福)된 날 광복절이다. 근대 우리 민족을 짓눌렀던 일제 강점의 시기가 끝나고 자유를 되찾은 해방의 날인 동시에, 숨 막히게 더운 여름이 가고 곧 선선한 가을이 올 거라는 기대가 공존하는 시기다. 이 절묘한 계절에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27년 전인 1991년 그날, 고(故)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3명이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었고, 이 사건은 1938년 중일전쟁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이 시행한 ‘종군 위안부’ 정책과 그 실체를 최초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본은 20만 명에 이르는 아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해서 성 노예로 삼았다. ‘위안부’ 중 80%가 식민지였던 조선의 여성이었고, 이들 대부분은 10대 소녀들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는 설움 받는 식민지의 표상이었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은 대부분 상처를 묻어둔 채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보상도 받지 못했고, 여전히 위협적인 국제정세와 경제적 협력으로 인해 일본과 불편한 공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91년 8월 14일, 50여 년간 묻혀있던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여성, 그리고 국제 여성 인권 문제로 확산되었고, 2000년 도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과 미국 일본군 ‘위안부’ 소송 등이 이어졌다.
마침내 2006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공식 인정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13일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소녀들이 처음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다. 민간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기념사업을 이제는 국가의 책무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긴 여정을 돌아보며 국립국악원에서는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공연을 개최한다.
국립국악원에서 열리는 '소녀를 위한 아리랑'은 이미 세상을 떠나거나 고령이 되어버린 피해자 할머니들, 식민지와 전쟁을 역사로만 배운 후속 세대들, 이 어두운 역사를 딛고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연이다. 아리랑을 국악 선율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같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나눔의 집이 함께 참여하고, 관람객들도 원하는 만큼 나눔의 집을 후원하여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데 동참할 수 있다.
우리의 과거사는 어둡고 슬프지만, '소녀를 위한 아리랑'은 원과 한을 넘어 희망을 여는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노래와 춤으로 마음을 표현해 왔다. 한창 피어나는 소녀들의 꿈, 이 꿈을 짓밟았던 아픈 과거가 강강술래, 살풀이 등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춤으로 표현되고, 이어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굿판이 펼쳐진다. 마지막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대로, 풍성한 국악 관현악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이 불렀던 아리랑과 여러 지역 아리랑을 듣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딛고 슬픔을 넘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