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이 흔들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동안 인터넷에는 "당신은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를 묻는 콘텐츠들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 유형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음악 취향을 분석하고, 어떤 영화 캐릭터와 닮았는지 테스트했다. 누군가는 그런 콘텐츠를 가볍다고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거기에 오래 머물렀다. 결과를 캡처해 저장했고, 친구에게 공유했고, 어떤 날은 그 결과 하나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 헤매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별자리로 사랑을 해석했고,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했으며, 브랜드와 취향으로 자기 삶의 분위기를 설명해 왔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그 문장이 자기 안의 어떤 불안을 잠시 설명해 주는가였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왜 사람들은 그런 콘텐츠에 반응할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무너지고, 쉽게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할 문장을 찾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런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좋은 콘텐츠는 바로 그 틈을 건드린다. 많은 기관과 브랜드는 여전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더 정확한 설명, 더 친절한 해설, 더 많은 데이터. 하지만 사람들은 정보보다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에 훨씬 강하게 반응한다. 어떤 콘텐츠는 머리로 이해되지만, 어떤 콘텐츠는 사람 안에 숨어 있는 결핍을 건드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억은 후자 쪽에 더 오래 남는다.
최근 준비한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연계 문화행사에서 사람들은 설명보다 '나의 이름과 이야기'를 쓰는 공간에 더 오래 머물렀다. 참가자들은 자기 이름을 여러 번 따라 썼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가장 잘 닮은 문장을 고르기 위해 한참을 망설였다.
완성된 글씨는 실제 전시장 안에 하나의 작품처럼 전시되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친구와 서로의 결과를 비교하며 웃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참가 신청이 마감되었고, 전시가 시작된 뒤에는 자신의 글씨를 다시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전시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요즘 콘텐츠는 점점 거울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세상을 보기보다,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먼저 확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명보다 "나를 알아봐 주는 콘텐츠"에 반응한다. "당신도 이런 적 있지 않나요"라는 문장 하나에 멈춰 서고, 자기 안의 오래된 감정을 건드리는 장면 앞에서 쉽게 스크롤을 멈춘다.
콘텐츠란 결국 인간의 결핍을 다루는 일에 가깝다.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배제되고 싶지 않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보다 외롭고, 생각보다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오래 남는 콘텐츠는 그래서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안에 오래 남아 있던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결핍을 자극하는 것이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정말 오래 남는 콘텐츠는 사람을 흥분시키기보다, 자신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왜 이 장면 앞에서 멈췄을까."
"왜 이 문장이 오래 남을까."
좋은 콘텐츠는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런 질문을 사람 안에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콘텐츠를 소비한다. 재미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콘텐츠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끝내 설명되지 않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