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읽는 시대감각] 취향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6.06.07 06:00

[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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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조성된 대형 벌룬 '반가라춘상'. 국중박은 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 형상을 한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과 춘식이로 대형 벌룬을 조성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조성된 '사유의 방'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어두운 공간 안에는 반가사유상 두 점만 놓여 있다. 특별한 영상도, 화려한 장치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공간에 오래 머물렀고, 누군가는 말없이 작품을 바라봤으며, 누군가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단순히 불상을 보기 위해서만 그 공간을 찾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사유의 방'이 가진 조용함과 절제, 사유의 분위기 자체를 경험하고 싶어 했다. 어쩌면 지금 시대 사람들은 작품만이 아니라, 어떤 분위기와 정서 안에 머무르는 경험 자체를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취향은 단순한 개인의 기호를 넘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언어가 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자유롭게 취향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어떤 음악을 들을지, 어떤 카페에 갈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할지 스스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사람들은 비슷한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비슷한 문장을 따라 쓰고, 비슷한 전시 앞에서 멈춰 서는 걸까. 유행은 늘 자발적인 얼굴을 하고 오지만, 대부분의 취향은 이미 시대가 만들어놓은 이미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타인의 시선'은 이제 누군가 한 사람의 눈이 아니다. 시대 전체가 만들어낸,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가 의식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예전의 억압적 권력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을 직접 통제하거나 금지하기보다, 무엇을 아름답고 세련된 것으로 느껴야 하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공간이 '힙한지', 어떤 취향이 '요즘다운 것'인지, 어떤 삶이 '멋진 삶'인지를 끊임없이 제안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 시선은 이미 자신 안에 들어와 있다.

'사유의 방' 역시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반가사유상을 기록하기보다, 그 조용한 공간 안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의 분위기까지 함께 공유하고 싶어 했다. 어떤 공간을 경험했는가, 어떤 전시를 알고 있는가가 점점 그 사람의 취향과 삶의 태도를 가늠하는 신호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WE'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 '코미디언'. 원래는 미술시장의 가격 논리와 권위를 향한 작가의 조롱이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본 풍경은 조금 묘했다. 사람들은 바나나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은 SNS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 바나나를 떼어 먹은 미학과 학생의 이야기마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시장을 비웃는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그 화제의 한가운데에 서 있고 싶어 했다.

조용한 사유의 공간이든 시끄러운 화제의 공간이든, 사람들은 결국 전시 앞에서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풍자에 공감해서 그 작품 앞에 선 사람조차 결국 그 풍자를 SNS의 인증샷으로 남긴다.

오늘날의 전시는 감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취향을 학습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어떤 삶의 분위기를 동경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장치가 되어간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다. 콘텐츠는 사람들의 관심을 움직일 뿐 아니라,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남기지만, 어떤 콘텐츠는 결핍과 비교만 남긴다. 더 세련된 삶, 더 인정받는 취향, 더 뒤처지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 구조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결핍을 가장 오래 붙잡는 이미지를 학습하고, 플랫폼은 사람들이 끝내 불안해할 만한 취향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촌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산업이 된다.

지금의 시선은 사람들을 억압하기보다,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게 만든다. 어떤 취향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콘텐츠는 바로 그 불안 위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종종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내가 만든 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기준이, 또 누군가에게는 결핍의 거울이 되지는 않는가. 오늘날의 권력은 더 이상 금지를 통해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세련됐다고 느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박물관 안에서, 그 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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