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두산그룹은 위기였다.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그룹을 덮쳤다. 채권단은 일부 자회사 및 자산 매각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안 마련을 압박했다. 여기에는 프로야구단 두산 베어스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두산그룹은 두산타워, 두산솔루스 등의 매각에 나서면서도 "두산베어스를 팔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구단 운영에서 나오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룹이 휘청이는 중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자산으로 분류된 것이다. 프로야구 원년(1982년)을 비롯해 총 6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 단순한 야구단이 아니라 그룹의 자존심이자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같은 두산베어스의 상징적 의미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언급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두산베어스 일본 전지훈련장을 찾아 "4위, 5위 하려고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며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베어스다운 야구로 팬들에게 보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두산베어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허슬(Hustle) 두'를 주문한 것이다.
위기에도 우직하게 열정을 발휘하는 '베어스 정신'을 유지한 덕일까. 두산그룹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친 후 2022년 2월 채권단 관리체제를 종료하는 것에 성공했다. 경영 정상화 이후에는 상승세다. 소형 건설장비를 만드는 두산밥캣은 연 이익 1조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알짜회사로 거듭났다. 에너지 안보가 화두인 시대에 두산에너빌리티가 영위하는 터빈, 원전 사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두산그룹의 시선은 이제 AI(인공지능)로 쏠린다. 두산 전자BG의 AI 가속기용 CCL(동박적층판), 두산로보틱스의 로봇 등에 그룹의 미래를 걸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한국을 찾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두산그룹은 황 CEO의 방한을 계기로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 강화를 노리고 있다.
여기서 다시 '야구단'의 가치가 증명됐다. 야구광인 황 CEO가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베어스와 키움히어로즈 간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과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미국), 웨이취안 드래곤즈(대만)의 홈 경기에서 시구를 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두산 입장에선 그룹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지켜냈던 야구단이, 미래 사업의 발판 역할을 하게 된 모양새다.
황 CEO가 마운드에 오를 때 타석에는 박정원 회장이 들어선다. 황 CEO는 엔비디아 창립연도(1993년)를 의미하는 93번을, 박 회장은 두산 창립연도(1896년)를 의미하는 96번을 유니폼에 새기고 야구장을 찾는다. 재계 관계자는 "양사 간 파트너십이 더욱 강화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게 유력하다"고 평가했다.
독자들의 PICK!
특히 황 CEO는 두산 전자BG가 생산하는 AI 가속기용 CCL의 원활한 공급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간 '윈-윈' 격의 결과물이 황 CEO의 시구를 계기로 마련될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 로봇 역시 협력 대상이다. 지난 4월 황 CEO의 장녀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는 경기도 성남시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센터를 방문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