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국내 테마파크가 이제는 20위권으로 밀려났다. 한국 테마파크 산업이 50년 역사를 맞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테마파크들이 거대 IP(지식재산권)와 체류형 콘텐츠를 앞세워 몸집을 키우는 사이 국내 업체들은 성장 정체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6일 TEA(세계테마파크엔터테인먼트협회)의 글로벌 익스피리언스 인덱스에 따르면, 에버랜드는 2006~2010년 세계 테마파크 방문객 순위 10위를 유지했다. 당시 연간 방문객은 617만~750만명 수준이었다. 2006년에는 750만명이 찾으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순위는 꾸준히 하락했다. 에버랜드는 2011년 12위로 내려앉은 뒤 2018년 19위까지 밀렸고, 2024년 기준 세계 20위를 기록했다. 2024년 방문객 수는 560만명으로 2006년과 비교하면 약 190만명 감소했다.
롯데월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2010년 세계 14위까지 올랐던 롯데월드는 이후 순위가 하락하며 2023년 23위로 밀려났다. 2024년에는 방문객 수가 전년보다 11만명 늘었지만 순위는 23위에 머물렀다.
반면 글로벌 '톱5'는 미국과 일본, 중국의 강력한 IP를 활용한 테마파크들이 장악했다. 2024년 세계 1위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위치한 디즈니월드의 '매직킹덤'(1783만명)이었으며, 2위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 파크'(1739만명)였다. 이어 일본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1600만명), 일본 지바현의 '도쿄 디즈니랜드'(1510만명), 중국 상하이의 '상하이 디즈니랜드'(1470만명)가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 성장 정체와 글로벌 테마파크 산업의 변화가 맞물리며 한국 테마파크의 위상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형 놀이기구가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이제는 IP와 콘텐츠, 관광 인프라를 결합한 체류형 모델이 대세가 됐다"며 "국내 테마파크도 새로운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테마파크가 글로벌 순위에서 하락한 배경으로는 산업 구조 변화가 꼽힌다. 과거에는 대형 롤러코스터와 신규 놀이기구가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현재 글로벌 시장은 IP(지식재산권)와 체류형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6일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 테크파크들의) 어트랙션 중심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뼈아픈 현실을 인정했다.
과거에는 더 높고 빠른 롤러코스터를 만드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강력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얼마나 많은 팬을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목소리다. 단순 놀이기구는 한 번 경험하면 수요가 줄어들지만 영화·게임·캐릭터 IP는 반복 방문과 추가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는 디즈니와 유니버설이다. 디즈니는 마블·스타워즈·겨울왕국 등 영화 IP를 활용해 테마파크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했다. 유니버설 역시 해리포터와 닌텐도 IP를 활용해 방문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테마파크 시장은 이들 IP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TEA(세계테마파크엔터테인먼트협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테마파크 방문객 순위 상위 25곳 가운데 12곳은 디즈니 계열, 5곳은 유니버설 계열이다. 상위 25곳 중 17곳이 사실상 강력한 IP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반면 미국의 '식스플래그'와 같은 스릴 어트랙션 중심 테마파크는 순위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테마파크의 역할 자체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찾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경험하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입장권 중심이던 수익 구조 역시 굿즈(기념품), 호텔, F&B(식음료), 공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상위권 테마파크들은 놀이공원을 넘어 숙박·쇼핑·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복합 관광지로 진화했다.
반면 국내 테마파크는 오랫동안 신규 어트랙션 중심 경쟁에 집중해왔다. 에버랜드의 티익스프레스, 롯데월드의 아트란티스 등이 대표적이다. 시설 투자만으로 방문객을 확보하던 전략이 통했던 시절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세계 시장이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내수 중심 시장 구조도 한계로 지목된다.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성장했지만, 국내 테마파크는 여전히 국내 방문객 비중이 높다. 외국인 관광객이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보다는 한국 여행 일정 중 한 곳으로 들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선두 업체들이 테마파크를 '여행의 목적지'로 만드는 데 성공한 반면 국내 테마파크는 아직 관광 코스 중 하나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도쿄 디즈니랜드와 상하이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테마파크 방문 자체가 여행의 주요 목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글로벌 테마파크들은 영화·영상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IP를 생산하고 이를 테마파크와 연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국내 테마파크는 원천 IP가 부족한데다 재투자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체 IP를 육성하고 지속적인 콘텐츠·시설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테마파크 산업이 직면한 위기는 경쟁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즈니나 유니버설과의 경쟁 이전에 소비자들의 여가 생활 자체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과거 놀이공원은 가족 나들이의 대표 장소였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주말이면 긴 입장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게임, 복합쇼핑몰, 전시·공연 등 대체 여가가 늘어나면서 놀이공원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다. 과거에는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처럼 외부 활동이 주요 여가였다면 이제는 스마트폰과 TV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OTT 서비스 이용률은 2016년 35%에서 2025년 81.8%로 9년 새 46.8%포인트 증가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시간을 둘러싼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게임 역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9% 증가한 23조9000억원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과거 놀이공원으로 향하던 여가 수요 일부가 온라인 콘텐츠와 게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 트렌드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루를 통째로 보내는 전통적인 나들이보다 짧고 강한 경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팝업스토어와 전시회, 페스티벌, 복합문화공간 등이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최근 대형 쇼핑몰들이 쇼핑뿐 아니라 F&B(식음료)와 문화시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결합한 체류형 공간으로 진화한 것도 같은 흐름으로 해석된다.
테마파크 산업 특유의 한계도 존재한다. 대부분 야외 시설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폭염과 폭우, 한파 등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기에 높은 시설 투자비와 유지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더 이상 테마파크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가 경쟁했다면 지금은 넷플릭스, 게임, 쇼핑몰, 각종 문화 콘텐츠와 경쟁하는 시대"라며 "소비자의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즐길 수 있는 대체재가 크게 늘어나면서 과거처럼 테마파크에 관람객이 집중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테마파크뿐 아니라 영화관 등 오프라인 콘텐츠 산업 전반이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