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88년 쌍문동 그 골목, 지금은 '치킨전쟁'

정혜윤 기자, 세종=정진우 기자
2015.11.17 03:21

[대한민국 자영업 보고서] 준비부족-사업부진-부채증가-폐업…'자영업의 악순환'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골목에 있는 치킨집 /사진=정혜윤

# 80년대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 당시만 해도 주택가에 구멍가게로 불리던 작은 슈퍼, 금은방, 통닭집, 빵집 등 몇개의 가게뿐이었다. 2015년 11월 쌍문동은 자영업자들의 전쟁터다. 15층~20층 건물 숲이 들어선 큰 길가에는 유리벽으로 둘러 싸인 2층짜리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자리했다. 27년 전 기다란 평상이 놓여있는 슈퍼와 회전등이 돌아가는 이발소 자리에는 전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똑같은 모양의 치킨집과 편의점이 즐비해 있다.

쌍문동을 찾은 지난 16일 오후 비교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는, 30~50m 간격으로 기름 냄새 솔솔 풍기는 치킨집들이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별 다른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하기 쉬우니까, 기름 온도 맞추고 받아오는 물건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사람들이 자꾸 치킨집으로 몰리는 것 같다" 7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48)의 한숨 섞인 이야기다. 얼마 전 바로 맞은편에 치킨가게가 새로 들어섰다. 열 발자국 정도 걸으면 닿을 거리에 또 같은 업종의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

김씨는 "옆 골목에도 조그맣게 치킨집이 하나 있고, 대로변에도 크게 하나 있다"며 "너무 많이 생기니까 갈수록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현재 매출액으로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씨는 "동네 애들도, 사람도 줄어드는 상황인데 치킨집만 더 늘어난다"며 "이렇게 자꾸 가게를 엎었다 시작했다 반복하니까 나라빚만 더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한숨쉬었다.

서울에서 지난해보다 치킨·피자·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많이 증가한 강북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국세청이 발표한 '사업자현황'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강북구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총 122개로 전년동월대비 123.23%를 기록했다.

강북구 수유동에서 7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모씨(53)는 벌써 치킨 브랜드만 세 번째 바꿔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씨는 "이 근처에는 그나마 오븐구이가 없어서 좀 괜찮은 편"이라며 "튀김 치킨을 할 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달, 오븐구이 치킨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째 되는 때부터가 고비다. 고씨는 "장사를 계속 해보니 유행을 타는 체인점은 보통 1년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뒤로부터는 매출이 점점 떨어진다"며 "끊임없이 메뉴에 변화를 주고 경쟁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봉구와 강북구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소를 취재한 결과, 요즘 영세 자영업은 1년을 버티는 곳이 드물고 3년 정도 하면 오래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봉구 쌍문동의 H 부동산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자주 바뀐다"며 "상대적으로 꾸준히 장사하는 집이 없는 건 아니지만 1년도 못채우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북구 수유동의 D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1년도 못하고 나가면 망한 것이고, 3년 정도 하면 손해는 안 보고 나가는 것"이라며 "짧으면 1년을 못하고, 길면 2,3년은 버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 이는 최근 통계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자영업자(개인사업자)는 전년동월대비 15만9000명 줄어든 557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5만7000명 감소한 뒤부터 △7월(-7만6000명) △8월(-18만3000명) △9월(-14만9000명) 등 5개월 연속 감소세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내놓은 '자영업자 지원 사업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창업 후 5년 생존율은 30.2%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1개국 중 20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국세청이 최근 10년간(2004~2013년) 개인사업자의 생존율을 조사한 결과는 16.4%로 더 떨어졌다. 창업은 949만건, 폐업은 793만건이었다.

자영업자들의 대출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해 1~9월 개인사업자 대출은 전년대비 23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3년(17조1000억원), 2014년(18조8000억원)의 연간 증가액을 넘어선 것으로 사상 최대치다. 신규 자영업자의 사업자금과 궁핍한 기존 자영업자의 대출이 모두 포함됐다.

눈에 띄는 건 개인이 빚을 내 사업을 준비하기까지 기간은 3개월 미만으로 매우 짧다는 것. 통계청의 '201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근로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53.4%)이 1~3개월의 짧은 준비기간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빚을 내 유행하는 업종을 좇다 망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뜻이다.

실제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조사를 통해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월평균 매출액이 100만원 이하인 자영업자 비율은 27%로 높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영업 창업이 과밀업종에 집중되다보니 그로 인한 자영업의 수익 구조는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윤 의원은 준비부족-사업부진-부채증가-폐업-(유행하는)자영업 재진입-공급과잉-폐업증가로 이어지는 자영업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상을 꼬집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이 과거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도 예전보다 한템포 빨라야한다"며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 사회적 파장도 크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국가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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