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남북 통일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작성해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40배에 달하는 경제력 차이가 나는 두 경제 체제를 통합할 때 예상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액션플랜 또는 매뉴얼에 해당한다. 북한의 비상 사태에 대비한 우리 군의 대응 계획을 담은 '작전계획 5027'의 경제 당국 판이다.
25일 복수의 정부, 통화 당국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통일 대비 비상 계획 문건을 공유해 보유 중이다. 국가 기밀로 분류돼 내부에서도 관련 업무를 하는 극소수만 열람이 가능하다.
문건은 통화와 조세, 사회보장 등 분야별로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 경제 통합 과정에서 충격을 줄이는 게 주된 목적이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사례를 참고했다. 독일은 1990년 동서 통일 이후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당시 동독 노동인구가 서독에 대거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제력 차이를 무시하고 동독 마르크를 서독 마르크 기준으로 평가하고, 임금과 연금 체계도 1대1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경제난은 구동독 지역이 심각했다. 동독 상품은 경쟁력을 잃었고, 2년 만에 동독의 총생산이 3분의 1까지 줄었다. 동독 경제활동인구는 80%가 실직하거나 이직을 해야 했다. 독일 실업률은 1990년 6.4%에서 94년 9.6%로 치솟았다. 막대한 재정 부담 때문에 독일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할증부가세를 도입하는 등 증세 조치를 단행했다.
현재 남북한 경제는 통일 직전 동서독보다 격차가 훨씬 크다. 1989년 인구는 동독이 1700만, 서독이 6500만 명으로 1대 4의 차이가 있었다. 1인당 소득 차이는 1대 3 정도였다.
남한과 북한의 인구는 2016년 기준 각각 5124만, 2489만 명으로 2대 1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이 146만 원으로 남한 3212만 원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은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북한의 인구가 과거 동독보다 많고 경제력은 더 떨어지기 때문에 남북 통일 때의 혼란은 독일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독일 통일 방식 대로 북한이 화폐를 남한의 ‘원’으로 통합할 경우 화폐가치가 절상돼 생산력이 감소하고 무역상품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우려해 화폐 가치에 차이를 둔다면 북한 인구가 남한으로 급격히 유입돼 사회문제화할 수 있다. 통일 비용 조달 차원에서 해외 자본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불가피하지만 이는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게 딜레마다.
정부 당국자는 "통일이 될 경우 경제 통합은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라며 "통일대비 비상계획 문건은 공개될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금고에 보관하면서 필요시 서명을 한 뒤 문건을 보고 다시 넣어 놓는 방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