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습니다."
용건을 묻자마자 돌아온 첫 마디였다.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대외부원장은 갈등관리 전문가다. 지난 5월부터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재검토준비단'의 단장을 맡아 왔다. 지난 12일로 모든 활동이 종료됐다. 그에게 반년 간 활동을 마친 소회를 물으며 "홀가분하다"는 답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해방감보단 안타까움이 앞서는 듯 했다.
준비단은 2016년 마련된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공론하는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꾸려졌다. 본격적인 공론화 전 환경·원전·지역 등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하는 절차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준비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갈등은 첨예했고 의견이 번번이 부딪혔다. 준비단은 수차례 회의 끝에도 속 시원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활동기간을 연장하며 의견 조율에 매달렸지만 많은 부분은 합의에 실패했다.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불리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화장실을 찾는 과정은 지난했다. 안면도·부안 사태는 지역주민들에겐 트라우마로 남았다. 단순히 '님비 현상'으로 치부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정책 결정이 큰 상처가 됐다.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의사결정 방식의 설계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들을 논의 테이블에 앉힌 것도 그래서다. 과거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세심함이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론화 전부터 입장 차만 확인하고 말았다. 앞으로 진통이 되풀이되는 걸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은 단장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의 결과는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승자가 되는 '윈-윈(win-win)' 게임 또는 모두 패자가 되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다. 결코 '윈-루즈(win-lose)' 게임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당장 준비단 안에선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더라도 6개월이 '무용'(無用) 한 시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이해로 나아가는 작은 걸음이 됐기를 기대해 본다. 양보와 대화의 기술을 발휘해 이번 만큼은 모두가 웃는 '윈-윈'으로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