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기업 살인을 저질렀다."
지난달 27일 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자 존슨 총리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제대로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영국 노동당 소속 한 지역 의원은 존슨 총리를 향해 '기업 살인'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현실성이 큰 얘기는 아니지만 산업재해와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영국에서 2008년 시행된 기업과실치사법(기업살인법)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국가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라는 재앙을 맞아 기업들이 대규모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할 수 있어서다.
영국 법률정보 전문매체 렉솔로지는 이 법으로 인해 수많은 병원과 요양원, 심지어 정부까지 범죄자가 될 잠재적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이 법은 개인을 처벌대상에 놓지 않지만 정부 기관은 포함된다.
영국 가디언도 지난해 5월 50여명의 집단 사망자가 발생한 한 병원이 기업과실치사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이 자체 조사 결과 병원이 마스크 등 각종 의료장비가 필수적임에도 충분한 양을 주문하지 않았고, 이로인해 의료진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고 지적하면서다.
렉솔로지는 코로나19 초창기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장비 대규모 부족사태를 겪은 만큼 기업과실치사법에 노출된 기업들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보호장비 확보가 불가능했음을 필히 입증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직원이 어디에서 코로나19에 걸렸는지, 사망 기여도는 어떠했는지 등 법적으로 다툴 내용이 많다.
영국에서는 기업과실치사법을 적용받으면 대체로 벌금형을 부과받는다. 벌금은 18만파운드(약 2억8000만원)에서 2000만파운드(약 307억원) 사이이지만 한도는 무제한이다. 기업에게 심각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면 경영진이 구속되기도 한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빅토리아주 댄 앤드류스 주지사가 잘못된 방역 조치로 지역감염을 확산시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과 비슷한 산업재해 관련 법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호주는 8개주 중 4개주에서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해 산업적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호주 스카이뉴스 등 언론들은 "앤드류스 주지사가 자신이 통과시킨 법에 의해 처벌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과실치사법을 적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이 해당된다. 미국에서도 기업과실치사법이 제정돼 있지 않다. 다만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의해 산업재해에 대해 기업을 처벌하기도 한다.
강기준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양대 노총의 입장은 단호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사업주에 부담이 없고, 가장 열악한 사업장은 제외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관계자는 7일 "실제 현장에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가장 크고 잦은 사고가 나온다"며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선 이와 같은 부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최근 성명에서도 "결국 국회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채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켰다"며 "경영책임자 처벌 또한 안전담당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고, 공무원 처벌 또한 삭제됐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더욱 강경하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관련한 성명에서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시키는 발주처의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하지만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면서 "중대재해 발생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현장과 중공업 현장에서 사고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2년간 적용을 유예한 점에 대해서도 미흡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가 5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둔 점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사업장수는 가장 많은 반면 근로환경은 가장 열악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2019년 기준)이 적용된 5인 미만사업장 수는 177만4088곳으로 종사자 규모별로 보면 가장 많다. 이는 전체 사업장수 235만9526곳 가운데 75% 수준이다. 고용보험적용 근로자수만 따져도 229만3673명으로 10~29인 사업장 다음으로 가장 많은 근로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의 보호를 완벽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제11조)은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잇따른 관련 규정 개정으로 5인 미만 사업장도 현재 최저임금이나 출산휴가, 육아휴직, 퇴직급여 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일반 근로자와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지만 근로시간과 부당해고,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규정은 여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노동계의 주요 요구사항은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에 △5인 미만 사업장 포함 △경영책임자의 범위에서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 삭제 △벌금하한선 도입 등으로 요약된다.
노동계는 설 이후 정부와 국회 등 입법 관계자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에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시킬지 추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여론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설 연휴가 지난 이후 우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 다시 대화를 하기로 했다"면서 "우리가 요구한 사안이 얼마나 반영되는지 보고 투쟁을 이어갈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명 기자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사후적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처벌 강화에 방점이 찍힌 중대재해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기업 91% 반대, 과도한 처벌 지적=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654개를 대상으로 '중대재해법 인식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90.9%가 중대재해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과도한 처벌 수준이다. 응답 기업의 95.2%는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에 대한 이같은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고 답했다. '매우 과도하다'는 답변이 78.7%로 가장 높았다. '다소 과도하다'는 의견도 16.5%를 차지했다.
처벌 강화가 중대재해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84.3%가 효과가 없거나 영향이 미미하다고 답했다. 처벌을 강화할 경우 기업 경영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군으로는 응답 기업의 89.4%가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대기업이라는 응답은 7.2%, 중견기업은 3.4%에 불과했다.
◇"국내공장 해외이전↑" "하청수주↓"=경제계는 중대재해법이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할 것이라 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초래할 수 있는 5가지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규제3법, 노조법 등이 통과된 가운데, 중대재해법마저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의 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 우려했다.
중대재해법이 생산기지 해외이전의 유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외국기업들의 국내투자 기피도 불가피해 국내산업의 공동화는 물론 기업 엑소더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미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직접 투자하는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 해외직접투자액은 618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1.0% 증가했다.
중대재해법 도입 시 원청이 하청의 안전관리에 대한 부담으로 사업확장을 주저하거나 도급을 축소해 결과적으로 하청 수주가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중 수급을 받는 기업의 비중은 42.1%에 달한다. 수급기업의 매출액의 대부분(83.3%)은 위탁 기업에 납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법으로 수급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불명확한 기준에 혼란, 보완 입법 필요성=의무내용과 범위가 불명확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중대재해법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포괄적이고 모호하게 제시하는 등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경제계와 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못한 졸속 입법이라 지적한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은 법안 심사 한 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6차례 이뤄진 심사 과정에서 공청회는 한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기업 현장에서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의무주체가 복수로 존재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누가, 어느 정도까지 이행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용역과 도급, 위탁의 경우 원청과 하청의 의무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실제로 부담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불확실하다. 보완없이 법 시행이 이뤄지면 관련 판단이 재량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원청과 하청이 모두 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보여주기식 의무이행만 할 뿐, 실질적 중대재해 예방 조치에는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오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