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간 담합이 있더라도 제재하지 않는 '처벌 제외 리스트'를 손본다. 최근 해운업계 운임담합에 대한 처벌 여부를 둘러싼 공정위와 해운업계 간 갈등으로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제재의 예외가 되는 항목을 정비키로 한 것이다.
7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만간 외부 전문기관에 '공동행위 규제 적용 제외 및 인가제도 관련 연구' 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규정된 담합 처벌 제외 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인가제도'로 △불황 극복을 위한 산업구조조정 △연구·기술개발 △거래조건의 합리화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해당하는 담합인 경우 공정위 인가를 받았다면 처벌하지 않는 규정이다. 두 번째로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대해선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공정위는 연구를 거쳐 이와 같은 담합 처벌 제외 제도의 보완·확대 필요성을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공정위와 해운업계가 해운사 간 운임담합을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극심한 의견차를 보인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달 국내외 23개 해운사가 15년 동안 한국과 동남아를 오가는 항로의 운임에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한국해운협회는 "공정위가 해운법과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100여년 이상 지속되고 국제법적으로도 확립된 공동행위의 취지를 무시했다"며 공정위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공정위가 무혐의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공정위와 해운업계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공정거래법과 해운법이 서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해운업계는 해운사 간 운임담합은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두 번째 담합 처벌 제외 규정인 '다른 법령(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런 주장대로 담합을 허용하려면 해운법에 규정된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한국~일본, 한국~중국 항로에서 이뤄진 해운사 간 운임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어 법률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번 연구를 거쳐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담합 처벌 제외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다만 국회가 공정거래법과 별개로 해운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어 두 법률 간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긴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해 9월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해운사 담합과 관련해 공정위 간섭을 일체 배제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정위는 해운법 개정안에 '해운사가 담합을 해수부에 신고한 경우에만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반영하기 위해 해수부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연구가 해운사 운임담합 사안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연구용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인가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라 전반적으로 담합 규제 적용 제외 체계를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