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재정 준칙'과 '조세 준칙'

박재범 경제부장
2023.04.03 04:25

# 팍팍하고 빡빡하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확정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보면 틈이 없다. 각 부처에게 내년도 '돈 쓸' 계획을 제출하라는 지침인데 실제론 어떻게 '돈 안 쓸지'를 말하라는 지시로 읽힌다.

첫 줄만 봐도 완고하다. '엄격한 재정 총량 관리와 건전 재정 기조 견지'. 나라 곳간을 지켜 살림살이를 튼실히 만들겠다는 선언이자 의지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 재정 의지는 강하다. 이전 정부의 확장 재정과 대비되는 긴축 재정 대신 '건전'을 강조한다. 전임 정부의 재정 운용이 방만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실제 2020년 512조원이던 본예산은 2023년 638조원으로 급증했다. 3년새 24% 이상 뛰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 수지 비율은 2017년 ?1.0%, 2018년 ?0.6% 수준에서 2021년 ?4.4%로 악화됐다.

2019년까지 40% 미만이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1년 47%로 증가했다. 2024년엔 5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돈 쓸 계획을 가져오라는 지침을 내리긴 어렵다.

재량지출 10% 감축이다. 금액으로는 10조~12조원 규모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마른 수건을 쥐어짜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 '재정 건전화' '건전 재정' 등은 정부에게 금과옥조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도 재정이었다. 재정이 건전해야 위기 때 재정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면 대내외 신뢰도가 떨어진다. 국제 사회에서 신용 리스크는 그 자체로 위기다.

나라 곳간을 지키는 게 쉽진 않다. 한번 열린 곳간 문은 닫히지 않는다. 물론 제도는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국가채무관리계획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지만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다른 재정 관련 규정도 법적?제도적 구속성이 없다.

정부가 '재정 준칙' 도입을 강력히 바라는 배경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2% 이내로 관리하는 게 골자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정부 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정부의 실질적 재정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광풍에 맞서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런 재정 준칙의 국회 통과가 당연시된다. 정부로선 나라 곳간 문을 채우는 강력한 열쇠를 얻게 되는 셈이다.

#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탓할 게 없다. 재정 건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나라 곳간을 바라보는 정부의 이중성이 아쉽다.

'재정 준칙'은 곳간에서 나가는 길의 문턱을 높인다. 그렇게 허튼 돈을 막는다. 반면 곳간으로 들어오는 길은 정부 관심 밖이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 과할 정도로 탄력적이다. 세금 얘기다.

세금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이다. 국민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것인 만큼 함부로 할 수 없다. 조세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하게 됐다. 조세법률주의다.

신중하게 세금을 걷으라는 취지인데 하루이틀이 멀다하고 법을 고쳐 세금을 부과한다. 누더기가 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재산세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수에 따라 쪼개고 조정지역?비조정지역 등으로 나눠 적용한다. 1년만에 세금이 200%, 300% 증가한다. 세액공제율 1%포인트 올리는 데는 난색을 표하면서도 '세금 폭탄'이란 아우성을 들으며 정부는 짐짓 미소를 짓는다.

재산세와 종부세에 세부담 상한제가 있긴 하다. 종부세의 경우 전년 납부액의 3배였다. 법을 개정해 150%로 낮춘다지만 '폭탄'이 '수류탄'되는 정도일 뿐이다.

포퓰리즘이 재정을 훼손했다면 정부는 조자룡 헌 칼 쓰듯 세금을 활용했다. 뒤엉킨 세제는 국민을 괴롭힌다. 재정 못지않게 조세도 건전해야 한다. '재정 준칙'은 마련했으니 이제 '조세 준칙'을 고민해보면 어떨지.

박재범 부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