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연대,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다

후쿠오카(일본)=조철희 기자
2026.01.03 07:50

[한일, 생존의 연대]<2-⑪>
카부 타카요시 규슈경제조사협회 총무기획부장 인터뷰 "투자·공급망·지역 협력으로 신뢰 제도화"

[편집자주] 2025년은 갈라진 세계, 갈라진 경제를 체험한 해다. 세계 경제는 보호무역 확산과 다자주의 붕괴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였다. '지경학(geoeconomics)의 시대', 한국 경제는 생존을 걱정한다. 일본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등 핵심 밸류체인을 공유하고 저성장·고령화라는 난제를 함께 안고 있는 두 나라. 한일 경제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 시대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델로 거론된다.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의 확산 속에서 한일 경제협력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현실적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한국 남부와 일본 규슈 북부를 잇는 지역 협력은 한일 경제연대의 실험장이자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카부 타카요시 규슈경제조사협회 총무기획부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경제협력에 대해 "동아시아의 지정학 리스크가 분명히 드러나는 가운데 공급망 안정과 같은 경제안전보장을 위해 한일의 긴밀한 협력은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카부 부장은 "작게 시작해 크게 키우는 방식으로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며 양국 정부가 한국 남부 지역과 일본 규슈 북부 지역을 경제특구 형태의 파일럿 존으로 추진하는 것을 제안했다. 또 "한일 경제협력의 핵심은 무역 거래가 아니라 투자 교류에 있다"며 "동종 산업 안에서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지고 함께 투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부 부장의 이같은 구상은 거창한 제도 통합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협력 구조를 먼저 만들자는 제안이다. 한일이 경쟁 중인 첨단산업일수록 단순 거래가 아닌 자본과 기술을 함께 묶는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카부 타카요시 규슈경제조사협회 총무기획부장

그는 "한일 기업은 기술 수준이 높고 수출 시장도 겹쳐 기본적으로 라이벌 관계"라며 "그 라이벌 관계를 넘어선 다음 단계에서야 비로소 기술 융합 같은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에너지나 반도체처럼 전략 산업에서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신뢰와 실적을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단계적 접근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실질적 니즈에 기반한 협력과 함께 그 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 프로젝트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부 부장의 이같은 문제의식은 한일 관계를 둘러싼 기존의 이분법적 논의를 넘어 보다 현실적인 협력의 조건을 묻는다. 역사 인식 문제와 정치권 변수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무엇을 먼저 쌓아야 협력 관계를 되돌릴 수 없게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카부 부장은 한일관계를 "차분하지만 돌발적 위험성을 내포한 상태"로 진단하면서 정치보다 앞서 경제 현장에서 신뢰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무역 확대나 선언적 합의보다 투자·공급망·지역 협력처럼 시간이 쌓일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카부 부장과의 일문일답.

"차분해졌지만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한일 관계"

-최근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양호하다. 양국의 정상 간에 셔틀외교가 지속되고 있다. 다만 역사 인식 문제나 정치인의 발언, 정치 변동이 도화선이 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수도 있다. 지금은 차분하지만 돌발적인 위험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 리스크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부품을 비롯한 공급망의 안정된 구축 등 경제안전보장 면에서 한일 양국이 긴밀하게 경제 협력을 행하는 의의는 크다.

-한일 간에 경제협력이 필요한 핵심 분야는 무엇인가.

▶한일 경제협력의 핵심은 투자 교류에 있다. 1970년대 한일의 투자 교류는 활발했다. 양국 사이에 경제 격차가 있었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가진 한국을 향해 일본으로부터 많은 직접 투자가 이뤄졌다. 한국도 마산과 같은 자유구역을 만들어 투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정비해 두었었다.

총투자액으로 말하자면 현재가 더 크고, 각지에 FEZ(경제자유구역)가 정비돼 있기는 하지만 일본으로부터의 투자처가 다방면화된 것 등을 상대적으로 보면 한국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양국이 이미 선진국 간의 관계가 되었고 기술·서비스의 수준이 비슷해져 과거와 같은 물의 흐름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적으로는 소매나 개인 서비스업 등 소규모 투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선진국 간의 교류에서도 대만 TSMC가 규슈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사례도 있다. 동종 산업 내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이 각자 잘하는 기술을 가지고 서로 투자하고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자본 이동이 가능하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생산 능력과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어떠한가.

▶한일 양국은 기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은 레벨에 있다. 그러나 수출 시장이 겹쳐 양국 기업은 기본적으로 라이벌 관계다. 라이벌 관계를 넘어선 그 다음 단계에서야 서로의 기술을 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사진

-한일이 LNG를 공동구매하거나 수소·원전 등 미래 에너지 기술을 공동개발하는 것은 어떠한가.

▶미래 에너지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한 뒤 그 이익과 시장 배분이 잘 정리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에너지 자원 구매의 경우 각국, 나아가 개별 기업마다 하는 것이 기본으로 공동구매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 펀드를 조성하는 등 자본 이동의 장벽을 낮추는 것은 어떠한가.

▶좋은 일이다. 정부 간 이상으로 민간 쪽이 움직이기 쉬울 것 같다. 메리트만 있으면 기업은 움직인다. 쓸만한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국경을 넘은 투자는 잘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일의 어느 스타트업이 어떤 기술·서비스를 가지고 있는지 서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베이스 등의 구축부터 착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일의 경제협력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나 AFTA(아세안자유무역협정) 수준의 경제블록까지 이르는 것은 어떠한가.

▶이른바 트럼프 관세와 같은 미국 제일주의나 그에 따른 미중 무역 마찰을 예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다. 한일 양국은 자유무역 속에서 경제 발전을 해 왔다. 두 나라만의 경제공동체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한일은 서로 선진국이며 관세 장벽은 이미 낮다. 현재진행형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더 멀티한 다국 간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광역의 자유무역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와 경제, 분리하지 않으면 협력도 없다"

-경제 협력에 실익이 있다면 역사 인식 문제를 차치하고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경제 협력에 실익이 있다면 역사 인식 문제에 눈을 감고서라도 협력 추진에 주력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역사 인식 문제를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일부 단체이며 양국의 많은 국민은 실익을 중시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이며 실행가능한 한일 경제협력 모델을 제안한다면.

▶최종 목표는 EU와 같은 지역 통합에 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작게 시작해 크게 키워 가는 생각이 필요하다. 거리가 가깝고 산업 구조의 친화성·유사성이 높은 한국 남부 지역과 일본 규슈 북부 지역을 우선 양국 정부가 파일럿 존으로 만들어 보자. 한국 사례로 말하면 제주특별자치도와 같은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곳에 인재, 권한, 재원 이 3가지를 보장함으로써 초법규적·자율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자. '1국 2제도'도 아닌 '2국 3제도'를 개념화하고 구체화함으로써 EU에 가까운 프리존을 창출하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니즈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일 국민이 서로 여행하는 것은 순수하게 상대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니즈가 있기 때문이다. 니즈의 뒷받침이 없는 공동 프로젝트는 오래가지 않는다. 실질적 니즈를 바탕으로 한 협력과 함께 그 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한국 남부 지역과 규슈 북부 지역은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는데 이 분야의 협력은 어떨 것으로 보는가.

▶두 지역이 유사한 산업 구조이기 때문에 잠재력은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함께 하지 않으면 거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규격이 다르면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료사진

-조선산업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때 일본은 조선 왕국이었다. 지금은 한국·중국과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이제 와서 조선인가'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조선업을 앞으로의 전략 산업의 하나로 선정했다. 한국 남부 지역에는 조선업이 집적돼 있다. 앞으로 조선업에서 협력이 있을 수 있다.

-두 지역이 공항·항구가 가까워 물류 네트워크에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거리가 가까워 수송 리드타임(lead time, 소요시간)이 짧다. 공항·항구 간 다빈도 운항은 한일해협을 끼운 이 지역만의 이점이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번호판을 단 트럭이 두 지역을 자유롭게 운항하는 심리스(Seamless, 끊김 없이 연결되는) 물류가 이미 실현돼 있다.

-한일해협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한일해협 주변의 개개 기업들이 가진 기술 레벨이나 서비스의 수준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이 지역의 자동차, 반도체, 조선 분야 기업과 제조기술은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집적돼 있는 곳이다. 이공계 인재들도 풍부하다. 한일해협의 높은 안전성 덕분에 항행 선박의 보험료가 낮다. 그러나 물류 면에서 육상 수송에 비하면 장벽이 있는 셈이다. 200km라는 거리는 일체적인 경제권을 형성하기에는 다소 멀다. 아울러 한일 양국은 경제 수준이 비슷하고 유사성이 높기 때문에 대형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다.

-두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어떤 경제협력을 할 수 있을까.

▶고도의 기술력과 설비, 연구소 등이 집적돼 있어 물리적으로는 공동연구 같은 것이 가능하고 인재 교류, 대학 간 교류가 가능하겠다. 푸드테크나 해상 로지스틱스 분야에서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산업 협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 사이의 장벽이 있을 수 있고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