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부진)과 중국 부상은 배터리 산업이 직면한 난제다. 잇단 계약 해지가 불거지고 투자가 중단되는 현실도 버겁다. 미래산업이자 에너지안보의 기저인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근 국내 대표 배터리 3사와 긴급 비밀회동을 가진 것도 이같은 위기감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간담회에서는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 글로벌 완성차 업체·합작 파트너 간 공급 계약 해지와 투자 순연 등의 논의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분야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은 지난해 12월에만 두 건의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체결했던 약 9조6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 취소에 이어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Freudenberg Battery Power System)와의 3조9000억원 규모의 계약도 백지화됐다. SK온도 충남 서산 3공장 증설과 관련한 투자 계획을 기존 1조7534억원에서 9363억9000만원으로 축소하며 가동 시점을 늦췄다. 전기차 수요 둔화를 반영해 투자 속도 조절로 풀이된다.
이차전지는 탄소중립과 미래 모빌리티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기술이다. 현재 배터리 시장은 전기차용 70%, 에너지저장장치(ESS) 19%, 정보기술(IT)·소형전자기기용 10% 등으로 나뉘어있다.
배터리 시장의 강자는 중국이다. 1990년대는 세계 최초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성공한 일본이 시장을 이끌었다면 2010년 LG엔솔이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80%는 중국이 차지한다.
국내 배터리 산업의 기초원료도 대부분 중국산이다. 양극재 기초소재, 니켈·코발트·망간 화합물 등을 포함한 중국산 전구체가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음극재 기초소재인 구형흑연 또한 사실상 전세계서 중국만 생산한다. 리튬·니켈·흑연 등 핵심광물 채굴·가공도 중국에 집중돼 있다.
가격 경쟁력으로는 중국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한국은 중국을 기술로 압도해야 한다. 공급망의 다변화도 필요하다. 국내 대표 배터리 3사의 셀 공장은 92.5%가 해외에 입지해 있다. 전기차 시장이 있는 곳에 공장을 가동해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지나치게 해외 생산 의존도가 높다보니 내수를 키워 국내 생산을 늘려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는 2035년까지 연평균 약 80만대 전기차 보급을 목표로 보조금, 충전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따른 ESS 수요 증가도 견인한다. 2038년까지 연 평균 1.5GW(기가와트) 보급을 통해 관련 시장의 양적 확대를 기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마더팩토리'로서 신제품 개발, 차세대 연구·개발(R&D)은 국내서 이뤄지도록 유도한다. 전고체·리튬금속·리튬황 등 차세대 산업기술 개발에 1824억원, 리튬금속·리튬공기·나트륨 등 이차전지 원천기술 개발에 974억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한다.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해 차세대 배터리 사업화 선도기업에 5년간 7조~8조원 수준의 투자, 융자도 검토하고 있다.
사실 배터리산업계가 바라는 것은 정부의 '직접 지원'이다. 김 장관과 비밀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전기요금 인하, 직접 보조금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직접 지원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정부가 지난 9일 발표한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은 배터리산업에 대한 지원 확대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차전지, 태양광셀, 풍력블레이드 산업에, 일본은 전기차, 반도체, 그린스틸, 그린케미컬 등의 산업에 자국 내 생산량에 비례한 세제 지원 제도를 이미 도입했다.
정부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을 포함해 국내 위기 산업 등을 고려해 국내생산촉진세제 등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실제 기업에 도움이 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부 지원책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