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세 물량 반토막 난 EU 시장… 韓 철강, 정상외교로 '실리' 챙겼다

세종=조규희 기자, 강영훈 기자
2026.06.30 17:58
3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철강제품이 쌓여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구리 함량이 15%를 넘는 파생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제품 내 금속의 함유 비율을 기준으로 50%의 관세를 매겨오던 방식을 보다 단순화한 것으로, 한국 기업들이 수출하는 세탁기와 냉장고 등이 이에 영향을 받게 된다. 2026.4.3/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평택=뉴스1)

한국이 유럽연합(EU)와의 철강 관세 협상에서 타국과 경쟁 없이 안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전용 쿼터로 총 207.3만 톤을 확보했다. EU가 자국 철강산업 보호와 안보 위기 대응을 이유로 무관세 수입 파이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고강도 수입제한 조치를 단행했음에도 이뤄낸 성과다. 치열한 다자 협상과 최고위급 정상외교를 총동원한 끝에 자유무역협정(FTA)국가와 비(非)FTA 국가 대비 손실을 최소화하며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30일 EU 집행위원회와의 협상 결과, 철강 수출 전용 쿼터로 총 207.3만톤을 확보하고 공용쿼터 147.5톤까지 합산하면 한국기업이 활용가능한 쿼터는 최대 534.8만톤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EU의 관세할당제도(TRQ)는 오는 7월 1일부터 발효된다.

EU의 이번 조치 핵심은 무관세로 EU에 수출할 수 있는 전체 쿼터 물량을 대폭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관세 폭탄'을 매기는 것이다. 기존 세이프가드 체제에서는 연간 총 3382만 톤까지 무관세 수입을 허용하고 초과분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새 제도에서는 전체 무관세 물량이 1835만 톤으로 약 46% 축소된다. 반면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율은 50%로 두 배 뛰어오른다. 사실상 쿼터 밖의 수출은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진입 장벽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 지속되면서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위기의식 속에 EU 의회·집행위·이사회가 합의해 이를 법제화한 것"이라며 "전체 파이가 절반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20여 개 주요 수출국이 제한된 물량을 놓고 치열하게 격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한국 전용 국가쿼터 최대한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타국과 경쟁 없이 안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무관세' 전용 쿼터로 총 207.3만 톤을 확보했다. 이는 기존 세이프가드 8차년도('25.7~'26.6) 전용 쿼터인 258.1만톤과 비교하면 약 19.7%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EU 전체 무관세 물량이 46% 깎여 나간 것에 비하면 감소율을 절반 이하로 묶으며 선방했다는 평가다. 여 본부장은 "통상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절대평가가 아닌 경쟁국 대비 손실을 얼마나 줄였느냐는 '상대평가'가 중요하다"며 "이번 협상에서 한-EU FTA 체결국 지위와 한국산 철강의 공급망 가치를 끝까지 설득해 최혜국 대우 수준의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한국산 철강이 EU 역내 산업을 해치는 단순 수입품이 아니라 현지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배터리 공장의 핵심 원자재이자 EU 제조업 공급망을 지탱하는 필수 소재라는 논리를 관철시켰다. 특히 지난 10일 개최된 한-EU 정상회담은 막판 협상의 결정적 모멘텀이 됐다. 정상 차원에서 한국산 철강의 현지 투자 및 고용 기여도를 강력히 제기하면서 실질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확보한 전용 쿼터(207.3만 톤) 외에 국가 간 경쟁을 통해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공용 쿼터' 147.5만 톤을 어떻게 선점하느냐가 향후 철강업계와 정부의 당면 과제다. 공용 쿼터는 분기별로 개시되는 '선착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는 우리 기업들이 민첩하게 대응할 경우, 무관세 수출 물량을 최소 207.3만 톤에서 최대 354.8만 톤까지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과거 8차년도 당시 한국은 전용 쿼터 258만톤에 공용 쿼터 약 60만톤을 보태 총 318만톤가량을 수출한 바 있다.

다만 공용 쿼터를 따내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인근 경쟁국들과의 속도전이 불가피하다. 항구별 전산 시스템 반영 시차 등 미세한 변수도 작용한다. 여 본부장은 "쿼터 개시일 전에 미리 유럽 인근 창고에 물량을 대기시켰다가 바로 통관시키는 등 기민한 물류 방책이 필요하다"며 "EU의 세부 운영 규정이 나오는 대로 민관이 합동해 공용 쿼터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EU 역내 철강 공급이 줄어 현지 철강 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이는 만큼, 물량 감소를 가격 상승으로 상쇄해 업계 수익성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해 중남미,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지역으로의 FTA 영토 확장을 통해 철강 수출 다변화를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0일 세종청사에서 유럽연합(EU)와의 철강 관세 협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6.30. /사진제공=산업통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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