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프레임 넘는 '전력 주권'…에너지 안보없이 성장도 없다

세종=조규희 기자
2026.07.19 09:15

[이념을 넘어 국익으로, 정책의 탈정치화]②
AI시대, '전력·용수' 정책은 '국가 아젠다'
반도체·AIDC로 신규 원전 필요성 재소환

강력한 한파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22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실시간으로 전력 수급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1.22/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전력 등 에너지와 수자원 정책은 정권에 따라 숱한 변천사를 겪었다. 정권교체기마다 주요 정쟁 소재이자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던 원전 문제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생산 혁명으로 에너지는 안보가 되고 물은 나라 경제의 생명줄이 됐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전력과 용수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념과 진영 논리를 넘어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주요 국가 아젠다로 전력과 용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서남권 반도체, 용인 반도체, AI 데이터센터)'의 성공 여부는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의 공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6.3GW(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하다. 용인 클러스터(15GW)와 전국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8GW)를 합하면 확정 전력 수요만 30GW에 육박한다.

24시간 미세공정을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에선 1초 미만의 미세한 전압 강하로도 수천억 원 상당의 웨이퍼를 폐기해야 한다.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널뛰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대규모 기저전원을 무중단으로 공급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남권 반도체 단지 전력 공급의 핵심 축이 돼야 할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은 당장 심각한 가동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 한빛 1호기가 수명 만료로 멈춰선 데 이어 오는 9월에는 한빛 2호기마저 설계수명이 다해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용인·호남 반도체 산단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한편,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활용해 기저전원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부의 속도감 있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안정적 전력 확보를 위해선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심사와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설치가 긴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전은 지금까지 정쟁의 도구나 정치적 이슈로 활용됐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고조되면서 민주당은 원전을 에너지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탈원전'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AI데이터센터 설립 등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력 충당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신규 원전의 중요성이 재소환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실용주의 국정 철학으로 신규 원전 필요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강릉 지역에 극심한 가뭄 계속되는 가운데 16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 바닥이 갈라져 있다. 2025.09.16. /사진=뉴시스

화석연료 퇴출과 신규 원전 건설 사이 공백을 메울 '브릿지(가교) 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도 빠른 속도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수명이 다한 노후 석탄발전소를 대체할 LNG 복합화력발전소는 건설 공기가 2~3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와 지역 인허가, 계통 연계 등 행정 절차를 포함하면 실제 완공과 상업운전까지는 최소 4~6년이 소요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신설 공백을 메우고 폭증하는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현실적 수단이 LNG 발전이다. 최근 용인을 포함한 대규모 산단 인근 LNG 발전소는 안정적 전원 공급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라 LNG 발전 설비를 2038년 69.2GW까지 늘릴 계획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구축 속도에 발맞추려면 더 탄력적인 수정·조율이 필요하다.

공업용수 확보도 마찬가지다. 김 장관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 4대강 사업을 "안 했어야 할 사업"이라 규정하고 '자연성 회복'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공식화되자 이에 필요한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보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후부는 올 연말까지 16개 보에 대한 처리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에너지와 용수는 국가적 아젠다로 정치적 도그마의 소재가 될 수 없다"며 "첨단산업 대도약을 위해 케케묵은 탈원전과 4대강 반대라는 프레임을 깨고 실용적 관점에서 전력 및 용수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