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전쟁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미국발 대규모 투자 청구서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관세 폭탄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미국과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최소 기준으로 대응하는 대미(對美) 투자 전선에 전운이 감돈다. 미국 투자를 위한 국내의 제도적 구조는 완비됐으며 이제 남은 건 구체적인 사업 발표뿐이다.
19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오는 22일부터 미국을 찾아 대미 통상·투자 관련 협의를 진행한다. 양국의 첫 프로젝트 발표 관련 최종 조율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협상이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운용방안(MOU)에 합의했다. 후속 절차로 우리 정부는 올해 6월 대미투자특별법 시행과 동시에 한미전략투자공사(KUIC)를 출범시켰다. 공사가 법정 자본금 2조 원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 재경부·기획예산처와 재원 분담 조율과 실탄 장전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가시적인 '1호 프로젝트' 발표 시기로는 다가오는 8월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8월 데드라인'은 오는 11월에 치러질 미국 중간선거라는 국내 정치적 시계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원 과반 의석을 아슬아슬하게 유지 중인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표심을 잡기 위한 확실한 '치적'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8월은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고 본격적인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는 분수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전리품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 정부도 다음달 투자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양국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각각 제시해왔다. 우리 정부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첨단산업 투자 리스트를 미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대한 논의가 실무단에서 이어졌다. 최근에는 미측이 역으로 제안한 프로젝트를 두고 협의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한미 공동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에너지'다. 미국 입장에서는 산업 부흥과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폭증에 따른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당면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기준 약 100GW(기가와트) 수준인 미국의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4배 확대하겠다는 초강수 목표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출범 직후 '에너지 비상사태' 등 3개의 화석연료 활성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에너지 지배력 강화를 천명한 바 있다.

지속적으로 에너지 프로젝트가 대미 투자의 주요 골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이유인데 정작 원전 건설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미국 내 원전 건설은 '웨스팅하우스'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원자로 노형은 웨스팅하우스, 건설 등은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우리가 독자 개발한 노형의 건설이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이다. 지난해 1월 양측이 지재권 분쟁 종결을 위해 극적 합의를 이뤘으나 여전히 독자 노형 수출 시 사전 검증 등 제약 요건이 까다로워 단기간에 마침표를 찍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미국의 급박한 전력 공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복합 발전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련 발전 터빈 제작 등 국내 생태계도 잘 꾸려져 있는 만큼 설계, 건설, 운영까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어 상업적 합리성을 따지기에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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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변수는 원자력 내지 '핵 관련 시설' 투자가 될 수 있다. 앞서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가 급거 귀국했는데 이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는 외교·국방·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 통상적인 참석자 외에 이례적으로 재정경제부, 산업통상부, 공정거래위원회 당국자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 건설 등을 제외하고 잠수함 등 원자력 기술 이용 관련 담당은 외교부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에 원자력 관련 핵심 보안 사업이 포함돼 있다면 정부 내부에서 고도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 장관의 출국 직전 이루어진 강 대사의 긴급 귀국과 비공개 NSC 소집이 바로 이러한 거대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