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나 국회에서 '봐주기' 지적이라도 나오면 담당자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한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관계자가 지목한 최근 공정위 '엄벌행정' 기류의 구조적 배경이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앞서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는 배경에 공무원 사회의 '보신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의 기업 불공정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 주문까지 더해져 공정위의 엄벌기조가 한층 강화됐단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혹시라도 기업 봐주기 의혹에 휩싸이면 담당 공무원은 감사원 감사나 감찰 등 징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최대한 엄정히 제재하는 게 개인 신상에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료 사회의 위험회피 성향은 '강력한 제재'라는 탈을 쓰고 표출된다. 막대한 과징금 처분을 내린 이후 법원에서 수년 뒤 패소 판결이 나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책임을 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공정위 출신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재에 따른 경제적 여파,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 과거 심결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며 "하지만 현재는 가능한 세게 처벌한 뒤 '법원에 가서 따져보라'는 식의 제재가 남발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공정위 공무원들은 '봐주기'란 단어에 민감하다. 설탕 담합 사건 때만해도 공정위가 과징금 990억원을 깎아줬다는 지적이 나오자 "과징금고시 등 관련 규정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의 이행강제금을 94% 감경했단 지적엔 "이행강제금 고시는 각 사건에 대한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고자 기준과 다른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추진된 조사 기능 강화와 조직·인력 확대도 공정위의 엄벌주의를 강화했단 분석이다. 실제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공정위 조사국이 2025년 폐지된 지 21년 만에 '중점조사기획단'으로 부활한다.
과징금 체계도 대폭 강화했다. 특히 과징금 하한을 높인 게 눈에 띈다. 예컨대 담합 사건의 경우 과징금 부과기준율 하한을 기존 0.5%에서 10%로 최대 20배 올렸다. 과거 3%로 설정된 중대한 담합의 과징금 부과기준율 하한은 15%로 상향했다. 사익편취(부당지원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사건에 대한 과징금은 부과기준율 하한은 기존 20%에서 100%로 높였다.
법 위반 억지력을 높이려는 취지지만, 공정위의 봐주기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는 효과도 크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공정위가 기업 봐주기식 처벌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대통령만 해도 공정위의 기업 봐주기를 경계하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대표적이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 소관 법률 13개 중 형벌이 존재하는 6개 법률 관련 사건에 대해선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 "공정위가 조사하고도 시간을 질질 끌다가 혐의가 없다고 덮어버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결국 공정위가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보니 '봐주기 할 권한'까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치권의 '봐주기' 의심 속에서 공정위가 감사나 징계 위험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엄벌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이 공정위를 '갈라파고스'로 만들었단 분석도 있다. 신고를 하고 공정위 전관이나 업계 관계자를 만나란 취지지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의심을 살 수 있다 보니 아예 접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시장과 격리돼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 흐름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또 다른 공정위 출신 관계자는 "시장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공정위는 과거에 얽매여 과거 기준으로 현재 시장을 재단하려는 측면이 있다"며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정태적이면 오히려 시장을 교란시키고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유연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