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농지(農地) 지킬까, 햇빛 내놓을까…갈림길 선 김인중

세종=정혁수 기자
2026.09.20 10:09

-재생에너지·햇빛소득 확대에 저수지·비축농지 활용…농어촌공사 역할 주목
-농지·농업용수 보전과 정부 에너지전환 사이…김인중 사장 선택에 시선 집중

[편집자주]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국농어촌공사 김인중 사장 /사진=한국농어촌공사

농지(農地)와 농업용수를 지켜온 한국농어촌공사가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햇빛소득마을 조성에 속도를 내면서 농지·저수지 등 농업기반을 관리해온 공사에도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어서다.

농어촌공사는 농지은행사업과 농업기반시설 종합관리 등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어촌 발전에 기여하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농업인의 땅과 물을 지키는 일이 공사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공사가 이제는 자신이 관리하는 저수지와 비축농지, 간척지 등을 재생에너지 생산공간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농업생산기반을 지키는 기관이 동시에 발전 부지를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방향은 명확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5일 제40회 국무회의에서 '송전망 건설 수용성 제고 방안'을 보고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전력수요 증가에 맞춰 송전망을 신속히 구축하고, 송전선로 주변에는 '계통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발전수익을 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영농형 태양광 설치 현장. /사진=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제공

정부가 햇빛소득마을을 올해 500개 이상 선정하고 2030년까지 2500개 이상 확산한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농어촌공사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 3월 내놓은 확산계획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수자원공사와 함께 저수지·비축농지 등 유휴부지를 조사·발굴해 지방정부와 현장지원단에 제공하고, 마을이 요청하면 현장 확인과 입지 검토를 통해 태양광 설치 가능 여부까지 지원한다.

기후부가 정책을 끌고 가더라도 농촌 현장에서 이를 구체화하려면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정부의 논리는 분명하다. 농촌의 햇빛과 유휴공간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그 수익을 주민에게 돌려주면 에너지 전환과 농촌소득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전망 건설에 따른 주민 반발을 줄이는 수단으로도 햇빛소득마을을 활용할 수 있다.

농식품부 역시 지난 5월 '농업·농촌 에너지 대전환 TF'를 출범시켜 식량안보와 조화를 이루면서 간척지와 저수지, 농지 등 대규모 농업기반을 재생에너지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농어촌공사 본사 전경.

농촌을 에너지 생산공간으로 활용하되 그 수익을 농가소득과 기본소득 재원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농어촌공사의 역할이다.

특히 이번 논란은 단순한 태양광 사업의 범위를 넘어선다. 송전망 논의의 배경에는 반도체와 AI 등 대규모 전력수요 증가가 놓여 있다.

농촌이 발전시설과 송전선로를 받아들이는 대신 어떤 이익을 얻을지, 그 과정에서 농업생산기반은 어떻게 보호할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농어촌공사가 단순한 부지 제공기관이 아니라 농업인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까지 요구받는 이유다.

기후부는 국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부처이고, 농식품부도 재생에너지와 농촌소득을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농어촌공사는 정부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공공기관인 동시에 농지와 농업용수, 농업생산기반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다.

(경기=뉴스1) 김영운 기자 = 사진은 1일 경기도의 한 농지의 모습. 2026.4.1/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어디까지 농지를 내놓고 어떤 저수지를 재생에너지에 활용할 것인가. 태양광 확대가 농업생산이나 수질·경관과 충돌할 경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발전수익은 실제 농업인과 주민에게 얼마나 돌아갈 것인가. 공사가 앞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다.

농어촌공사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윤성은 농어촌에너지처장은 지난 5월 농식품부 TF 회의에서 "농업생산기반시설을 활용할 경우 주민수용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업생산기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조화로운 사업 설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와 농업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활용도가 낮은 공간을 이용하거나 영농을 유지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고 그 이익이 농촌에 돌아간다면 새로운 농가소득 모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국가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농촌의 땅과 저수지만 내놓고 발전의 편익이 외부로 빠져나간다면 농업인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영농형 태양광 설치 현장. /사진=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제공

그래서 농어촌공사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것인지보다 '어떤 원칙으로 협조할 것인가'를 먼저 밝혀야 한다.

공사를 이끄는 김인중 사장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농업인의 목소리를 정책에 얼마나 반영할지,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을 농촌의 새로운 소득기회로 어떻게 연결할지가 그의 과제가 됐다.

농지를 지킬 것인가, 햇빛을 내놓을 것인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의 기반을 지키면서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일은 농어촌공사의 몫이다.

농업인과 국민의 시선이 김인중 사장과 농어촌공사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