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소재의 재난영화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몇 개 있다. 아마도 ‘분노의 역류’(1991)가 첫 손으로 꼽힐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선한 화재 진압 명장면이 많다. 특히 시각효과가 무척 빼어났다. 꿈틀거리는 불길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앞서 재난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도 있다. 1974년 미국 개봉 후 국내엔 1977년 소개된 ‘타워링’이다. 당시 가장 ‘핫’하던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이 주연했다. 샌프란시스코 135층 빌딩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려는 소방관들의 활약을 그렸다.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다. 소재의 특이성이나 드라마의 구성에서 재난영화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실화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2017년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의 ‘온리 더 브레이브’다. 2013년 애리조나 야넬힐 산불 사건을 다뤘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산불로부터 한 마을을 지키려는 소방관들의 헌신을 담았다. 당시 안타깝게도 19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2편 정도가 생각난다. 2012년에 나란히 개봉했던 ‘타워’(김지훈 감독)와 ‘반창꼬’(정기훈 감독)다. ‘타워’는 ‘한국판 타워링’이라고 할만큼 위험천만한 재난상황과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반창꼬’는 재난현장에서 꽃피운 로맨스를 그렸다.
소방관 소재 영화는 위기일발의 화재 현장 묘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 많다. 소방관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불길과 사투를 벌이고, 인명을 구조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일부는 실화 소재라는 점에서 더욱 사실적인 감동을 주지만, 영화적 구성의 측면에선 ‘재난영화’의 구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다음달 4일 개봉하는 ‘소방관’(곽경택 감독)도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영화는 2001년 발생한 서울 홍제동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23년 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참사다.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무려 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좁은 골목길의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불이어서 진압에 애를 먹었고, 불길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건물이 붕괴되면서 소방관들이 매몰돼 숨졌다. 한국 소방 시스템이 지금보다 매우 빈약한 때의 일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의 처우와 소방 장비의 개선이 이뤄졌다.
영화는 이런 사실을 매우 충실하게 전한다. 아찔한 화재 현장과 인명 구조에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모습 등을 긴박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화재 현장은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하고 실제 불을 피워서 재현해 더욱 생생해 보인다. ‘온리 더 브레이브’처럼 실화 소재의 묵직함이 있고, ‘분노의 역류’처럼 극적인 긴장이 있으며, ‘타워링’이나 ‘타워’처럼 스릴이 넘친다.
하지만 주인공인 소방관들의 서사는 다소 전형적이고 헐겁다. 신입 소방대원 철웅(주원)이 잠시 동안의 방황을 거쳐 진정한 소방관으로 성장한다든지, 베테랑 구조반장 진섭(곽도원)이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무를 완수한다든지 하는 설정은 익숙해서 평범하다.
심지어 극 중 대사를 통해 소방관들의 진심을 꺼내는 장면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재난영화를 보면서 간접 체험했고,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숭고한 희생들을 지켜보며 추모했다. 따라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2020년 제작됐는데 4년이 지나 뒤늦게 개봉하는 것도 아쉽다.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을 늦추다가 어렵게 개봉일을 잡았는데 주연배우인 곽도원의 음주운전 사고가 터지면서 또다시 불발된 적이 있어서다. 곽 감독의 입장에선 답답했을 수 있겠다. 오죽하면 제작보고회에서 "곽도원이 밉고 원망스럽다"고 했을까.
곽 감독은 ‘친구’(2001)로 잘 알려진 연출가다. 작품성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하며 이후 톱스타들을 기용해 규모 있는 대작들을 많이 만들어왔다. ‘태풍’(2005), ‘사랑’(2007), ‘통증’(2011), ‘극비수사’(2015), ‘희생부활자’(2017) 등이다. 하지만 ‘친구’만큼의 흥행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평단의 비평과 관객의 흥행에 목마른 상태. ‘소방관’으로 다시 관객의 마음을 얻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래도 실화 영화가 가진 무게감은 울림이 있다. 소방관과 가족, 지인들을 위한 시사회장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흐느끼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순직 소방관들의 동료와 가족들이 있었을 것이다. 23년 전의 비극을 눈앞에서 다시 확인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 관객이라도 영화 앞에서는 절로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 뉴스를 통해 얼핏 알고 있는 일이지만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는 소방관들의 헌신과 책임의식은 감히 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도 소방관 가족들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근심과 걱정을 지우지 못한다. 남을 구하기 위해 매번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환경은 그저 짊어지기엔 가혹하다.
가수 박효신이 5년 만에 내놓은 신곡 ‘히어로’(HERO)가 영화에 삽입돼 감동을 더한다. 곽 감독은 "실화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만큼, 테크닉보다는 치열함과 진정함으로 승부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