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美 토니상 수상이 안겨준 과제 [IZE 진단]

박병성(공연 평론가) ize 기자
2025.06.11 09:41

K-뮤지컬, 소재고갈에 시달리는 미 브로드웨이에 대안 될까

미 토니상에서 6관왕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 사진제공=NHN링크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토니상에서 작품상, 극본상, 작곡상, 연출상 등 여섯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언론에서는 이 일을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에 견주기도 했다. 다소 과장된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해피엔딩'(브로드웨이 공연명 ‘Maybe Happy Ending’)의 토니상 수상은 충분히 그럴 만한 사건이다.

토니상은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간 공연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연극과 뮤지컬로 나누어 시상하는 데 78회를 맞는 동안 비영어권에서 개발된 뮤지컬이 토니상의 주요 부문을 수상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토니상은 뮤지컬의 본산지인 미국과 영국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름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뮤지컬도 브로드웨이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브로드웨이 무대는 공연인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그런 무대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토니상의 주요 부문을 휩쓴 것이다. 한국 미디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우란문화재단이 박천휴 작가와 윌 애른슨 작곡가를 지원하면서 개발되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참여했던 윌과 휴는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초연되었다. 근미래 인간을 돕기 위해 개발된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냈다. 휴의 서정적인 가사와 윌의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은 국내 무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공연이 개발됨과 동시에 우란문화재단 지원으로 2016년 뉴욕에서 영어 버전의 리딩과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뉴욕에서 리차드 로저스상을 수상하였고 8번의 토니상 수상 경험이 있는 브로드웨이의 노련한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의 눈에 들면서 브로드웨이 공연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2020년 1월 아틀란타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친 후 브로드웨이 진출을 타진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코로나19가 일어나면서 지난해 11월 1000석 규모의 벨라스코 시어터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미 토니상을 수상한 박전휴 작가(왼쪽)-윌 애른슨 작곡가 콤비. 사진출처=로이터=뉴스1

그동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꿈의 무대였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에 처음 선보였을 때 관객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작품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고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헬퍼봇의 사랑 이야기는 브로드웨이에서 낯선 소재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떠올려보면 과거 히트한 뮤지컬을 리바이벌하거나, 기존의 책이나 영화 아니면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우리 뮤지컬 관객과 다르게 브로드웨이 관객층이 중장년층이 중심 관객이기 때문에 향수를 자아내는 작품이 많다. SF적인 소재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출발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낯설었기 때문에 공연 초반 관객의 관심을 덜 받았지만, 작품을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첫 주 46만 달러에 그쳤던 매출액은 최근 100만 달러를 넘겼다. 관객층도 기존 브로드웨이의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관객층까지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열린 결말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준다. 신선한 소재와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유려한 음악에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극 구조는 팬덤을 형성했다. '어쩌면 해피엔딩' 관객들은 스스로를 작품 속 등장하는 반딧불이(Fireflies)라고 칭하며 SNS에서 작품 소식을 전파하기도 했다.

한국과 브로드웨이 공연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노래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한다. 브로드웨이에서 개발 과정에서 로컬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우선 한국 공연에서는 올리버와 클레어 그리고 해설자 세 명의 배우만 등장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한 명의 배우를 추가해 올리버의 주인 및 다양한 역할을 맡긴다. 한국 공연에서는 이야기로만 제시되었던 올리버가 폐병을 줍는 장면이 재현되는 등 구체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넘버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작품의 제목과 같은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새로운 넘버로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올리버의 심정을 통해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곡이다. 박천휴 작가에 의하면 브로드웨이 관객들은 오히려 감정적인 곡에 마음을 닫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현지 관객의 성향에 맞게 곡을 변경한 것이다.

몇몇 장면이나 노래가 현지화 과정을 거쳤지만 극적 배경을 근미래의 서울과 제주 등 한국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다. 올리버가 정성을 들여 키우는 화분을 한국어 그대로 ‘화분’으로 사용한다거나, 무대 곳곳에 한글이 등장하는 등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이것이 좋은 의미에서 이국적인 취향으로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해피엔딩' 2020년 한국 공연 장면.

'어쩌면 해피엔딩' 이후 한국의 브로드웨이 진출작 또는 토니상 수상작이 언제쯤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뮤지컬계의 자신감과 더불어 과제도 안겨주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윌과 휴가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했기 때문에 자연스런 현지화 작업이 가능했다. 게다가 초기 개발부터 브로드웨이 개발 시스템을 거치면서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대학로 뮤지컬은 300석 이하 소극장 뮤지컬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대학로 300석 규모에서 올라간 작품이지만 적극적인 무대화를 통해 소극장 뮤지컬도 브로드웨이 진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데에 작품의 규모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로 뮤지컬은 마니아 관객 위주의 특성이 강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대학로 뮤지컬 중에서 몇 안 되는 일반 대중들에게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더 큰 대중 공연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규모뿐만 아니라 대중적이고 보편적 관객을 폭넓게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 개발이 필요하다.

과제와 더불어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시장에서의 강점을 보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는 소재 고갈에 고심 중이다. 다양한 실험과 혁신적인 소재를 실험하는 한국 뮤지컬은 새로운 소재 공급처로 강점을 띠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한국 뮤지컬은 공연을 좋아하는 브로드웨이의 기존 중장년 관객층뿐 아니라 새로운 젊은 관객층 개발에도 유리하다.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의 토니상 수상작이 이렇게 빨리 달성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한국의 토니상 수상작도 ‘어쩌면’ 예상보다 빨리 등장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