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는 악마예요. 사람의 탈을 쓴 악마."
'친애하는 X'의 주인공 백아진(김유정)을 보고 있자면 '아름다운 여자는 위험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치명적이어서가 아니라 조종과 쾌락,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냉혈한 본능이 뒤엉켜 만들어낸 위험한 구조물이라서다. 그리고 김유정은 그 가면을 완벽하게 자신의 얼굴에 밀착시켜 배우로서 궤적을 완전히 새로 썼다.
'친애하는 X'는 시작부터 아진에게 온갖 불행을 쏟아낸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사는 물론이고, 백도 돈도 없지만 뛰어난 미모와 비상한 머리를 가진 아진에게 세상은 단 한 번도 온순하지 않다. 학교에서 전교 1등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 심성희(김이경)는 그런 아진을 질투하고, 그의 결핍을 약점 삼아 끊임없이 흔든다.
그러나 아진은 성희의 적대감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긴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그 취약한 틈을 조용히 파고드는 데 능하다. 뒷조사를 통해 성희 부모의 약점을 쥐고,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의심의 씨앗을 퍼뜨린다. 여기에 사소한 거짓말을 덧입혀 성희를 도둑이자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교실 안에서 완벽히 고립시킨다.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한 행위라서 더 섬뜩하다. 아진은 자신을 보호하는 윤준서(김영대)의 믿음, 그리고 성희가 품은 짝사랑의 감정을 한데 엮어 치밀한 심리전을 완성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게임은 이미 아진의 손안에 들어와 있다.
성희가 결국 밑바닥을 치고 학교를 떠나는 날, 아진은 성희의 귓가에 "너 정말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구나. 그럴 순 없어, 성희야. 네가 내 표적이 되어줘서 즐거웠어. 고마워. 학교생활 지루하지 않게 해줘서"라고 속삭인다. 이 지점에서 '친애하는 X'는 한 여자가 생존의 이름으로 악마가 돼가는 과정을 잔혹하게 기록한다.
김유정은 이 복잡한 악의 탄생을 놀라우리만큼 정교하게 구현한다. 무너지는 성희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동정도 후회도 없다. 대신 이 모든 걸 스스로 설계했음을 아는 자의 냉소와 공허가 교차한다. 그 얼굴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선함을 연기하던 배우가 악의 정서를 이해하는 순간, 화면은 오직 김유정의 얼굴만으로 어떠한 희열을 안긴다.
김유정의 백아진이 유독 섬뜩한 이유는 철저히 이전의 얼굴을 반전시켜서다. 아역으로 데뷔해 햇살 같던 미소와 맑은 눈빛으로 '순수의 상징'처럼 존재했던 배우가, 이제 그 순수를 가장 냉혹한 무기로 바꾸어 들었다. 성인이 된 후에 꾸준히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성장의 변주를 이어왔지만,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그 궤적의 가장 극단적인 변주다.
그동안 쌓아온 맑고 깨끗한 이미지 위에 김유정은 악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잔혹함을 겹쳐놓았다. 그 결과 백아진은 선함이 결핍된 악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고 어쩐지 응원하게 되는 위험한 복합체로 완성된다. 김유정은 이 복잡한 구조를 내면의 호흡으로 오롯이 끌어안으며, 스스로 쌓아온 경계를 단숨에 허물고 전혀 다른 차원의 배우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