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와 ‘OTT 왕국’ 넷플릭스가 만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를 각색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븐 다이얼스’(이하 ‘세븐 다이얼스’)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2026년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사후 50주년을 맞는 해로, 공개 시기에 의미를 더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위즈덤하우스) 국내 출간을 비롯해,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열리는 애거사 크리스티 대규모 전시회 등 사후 5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들이 활발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세븐 다이얼스 하면 떠오르는 거 없으세요?” 드라마 속 대사이기도 한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다면 드라마 내용이 한층 새롭게 다가올 것이고, 잘 모르더라도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재미는 충분하다. 드라마 ‘세븐 다이얼스’는 192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교외의 저명한 저택 ‘침니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세븐 다이얼스’의 비밀을 풀어가는 주인공 번들(미아 매케나-브루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죽은 이의 방에 놓인 시계들의 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시간과 진실의 상관관계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원작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는 1929년에 발표된 소설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이다. ‘번들’로 불리는 주인공 아일린 브렌트는 침니스 저택의 주인인 케이터햄 경의 딸로, “총명하고 명민한 젊은 여성”이다. 자동차 운전을 즐기고 거침없는 행동력을 가진 번들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탐정 캐릭터 중에서 젊고 에너지 넘치는 여성 탐정 캐릭터로 손꼽힌다. 번들 캐릭터는 스파이 소설 성격의 ‘침니스의 비밀’(1925)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 형사 캐릭터인 배틀 총경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드라마 ‘세븐 다이얼스’는 원작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각본과 크리에이터를 담당한 크리스 칩널은 ‘브로드처치’ ‘닥터 후’로 알려진 작가로, 기존 캐릭터를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가장 큰 변화는 ‘침니스의 비밀’부터 번들과 가까운 캐릭터인 아버지 캐이터햄 경 대신, 원작에선 사망한 인물인 어머니 캐릭터 레이디 케이터햄(헬레나 본햄 카터)를 내세운 점이다. ‘여성 탐정’ 번들의 존재감을 강조하면서 영국 귀족 사회를 풍자한 원작에 여성주의 시각을 더한 각색으로 읽힌다.
‘세븐 다이얼스’는 정통 추리극의 장치를 적극 활용한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3부작 구성을 취해 추리 드라마 특유의 호흡을 보여준다. 에피소드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프닝 구성, 시계라는 소재에 맞춰 시계판을 활용한 촬영과 시계 초침 소리를 변주한 음악이 주제를 강화한다. 부감 촬영과 공들인 미술, 세트 등에서 영국 드라마 장인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캐스팅은 전 세계 젊은 시청자들을 겨냥한다. 2024년 영국 아카데미에서 라이징 스타상을 받은 미아 매케나-브루스를 중심으로, 에드워드 블루멜, 엘라 레 스미스, 코리 밀크리스트 등 영국 신예 배우들이 얼굴을 비춘다.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시리즈에 이어 여성 추리 드라마에 힘을 보탠 헬레나 본햄 카터, ‘셜록’의 왓슨 역할 이후에 묵직한 형사 캐릭터로 돌아온 마틴 프리먼의 합류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번들과 배틀 총경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후속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븐 다이얼스’는 3개의 에피소드로 완결되지만, 크리에이터 크리스 칩널이 “번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어 ‘침니스의 비밀’을 각색한다면 속편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반전과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들에게 고전 추리극의 매력만으로 설득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숙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애거사 크리스티 원작의 영상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중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0시를 향하여’가 영국에서 방영되었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가장 아꼈던 탐정 콤비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6부작 드라마가 제작 중이다. 케네스 브래너의 포와로 시리즈도 차기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 다른 대표 탐정 ‘미스 마플’ 역시 새로운 프로젝트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이 시대에 맞게 변주되며 새로운 작품들로 거듭나는 한, 애거사 크리스티가 정교하게 설계한 추리 시계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유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