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좀처럼 넘기 어려웠던 '천만의 벽'을 2년 만에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는 지난 6일 하루 동안 27만 1764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 1,004만 9,749명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에 등장한 한국 영화 1,000만 작품이자 역대 국내 개봉작 가운데 34번째로 탄생한 1,000만 영화다.
이번 기록은 여러 측면에서 상징적이다. 무엇보다 사극 장르의 흥행 계보를 다시 한 번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사극 영화가 됐다. 10여 년 가까이 이어졌던 사극 장르의 1,000만 공백을 다시 채운 것이다.
극장가 전체의 흐름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다. 팬데믹 이후 관객 수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 돌파는 여전히 쉽지 않은 벽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천만 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2024년에는 '파묘'(1191만명)와 '범죄도시4'(1150만명)가 1,000만 고지를 넘었지만 이후 한동안 기록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왕과 사는 남자'는 설 연휴와 삼일절 연휴를 거치며 가족 관객층까지 폭넓게 끌어안는 데 성공했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12일 차에 200만 명, 설 당일이었던 개봉 14일 차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15일 차에 400만명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삼일절에는 하루 동안 81만 7,000여 명이 관람하며 개봉 이후 최고 일일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며 결국 개봉 31일째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속도 면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역대 사극 천만 영화와 비교하면 '명량'이 개봉 12일 만에 1,000만을 돌파하며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왕의 남자'는 각각 38일과 50일이 걸렸다. '왕과 사는 남자'는 31일째에 1,000만 관객을 넘기며 두 작품보다 빠른 속도를 보였다.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력을 남겼다. 광천골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이끈 유해진과 금성대군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준혁은 이번 작품으로 개인 통산 5번째 1,000만 영화 기록을 세웠다.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과 한명회를 연기한 유지태는 이번 영화로 처음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역시 이번이 첫 1,000만 동원이다.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입봉한 장항준 감독은 24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 흥행작을 탄생시키며 '거장항준'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최근에는 예능에서 활약하며 대중에게 방송인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돼 있었지만, 이번 작품으로 영화감독으로서 저력을 입증했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는 작품이 가진 서사적 매력도 큰 역할을 했다. 영화는 조선 단종 시기를 배경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과 그 곁을 지키는 백성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의 잔혹함과 인간적인 연민을 함께 그려낸다. 역사 속 비극적인 군주로 알려진 단종의 삶을 중심으로 권력과 충성, 인간적 선택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풀어낸 점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무거울 수 있는 역사 소재를 인간 중심의 이야기로 풀어낸 점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면서 남녀노소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서사를 구축했다. 실제로 설 연휴 기간 동안 가족 단위 관람객 비중이 크게 늘며 흥행 상승세를 견인했다.
여기에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에 둔 이색적인 소재 역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기존 사극 영화들이 영웅 서사나 전쟁 중심 이야기를 다뤘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어린 군주의 비극적인 운명과 그를 둘러싼 인간애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출연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도 흥행에 큰 역할을 했지만, 관객들의 자발적인 입소문이 일종의 놀이처럼 확산한 것도 흥행에 큰 요인이 됐다. 온라인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밈'처럼 소비되며 화제를 키웠다.
장항준 감독이 라디오에서 언급한 성형·개명 등 이른바 '천만 공약'은 관객들 사이에서 유쾌한 놀림의 소재가 됐고, 완성도를 두고 여러 반응이 나왔던 호랑이 CG 역시 하나의 장난스러운 화젯거리로 소비됐다. 이러한 반응들은 관객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처럼 확산하며 작품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관객들의 자발적인 입소문과 화제성이 맞물리며 흥행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절찬 상영 중인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넘어 어디까지 흥행 기록을 확장할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