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클라이맥스'는 꽤 밀도 높은 드라마다. 1, 2회 만에 대권주자를 둘러싼 비위를 폭로하고 거대 카르텔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만큼 전개는 폭주 기관차처럼 빠르다. 또 정치물처럼 서늘하게 날을 세우다가도 어느새 부부 사이의 아슬아슬한 애증과 텐션을 끌어올리고, 이내 다시 비정한 권력 서사로 복귀한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유동적인 리듬은 시청자를 단숨에 쥐락펴락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진짜 묘미는 따로 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이입하게 만들면서도, 이들이 얽혀 있는 거대한 권력의 생태계를 관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인물의 사정과 함께 그 세계가 작동하는 냉혹한 구조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클라이맥스'가 입소문을 타고 첫 주 방송 만에 시청률 상승세를 그린 이유다.
극의 중심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권력을 쥔 세 축이 존재한다. 공장 노동자 아들로 태어나 법과 공권력을 쥐게 된 검사 방태섭(주지훈),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한류스타 추상아(하지원), 그리고 이 모든 판을 돈으로 통제하려는 재계 실세 이양미(차주영)다. 이들은 분리된 세계에 살지 않는다. 욕망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 구조를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관계는 방태섭과 추상아의 결혼이다. 겉보기엔 '개천에서 난 용'과 '톱스타'의 드라마틱한 만남 같지만, 실상은 욕망 실현을 위한 거래이자 동맹이다. 때로는 부부로서 아찔한 섹슈얼 텐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짙은 애증과 야망이 뒤엉킨 위험한 줄타기다.
극 중 가장 먼저 위기에 몰리는 인물이 추상아라는 점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구설 하나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톱스타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상아는 극 초반부터 '탈세 논란'이라는 치명타를 맞고 한없이 무력해진다. 이때 자본을 쥔 이양미가 소속사 투자와 캐스팅을 무기로 상아의 구원자이자 통제자로 개입한다. 이는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 역시 거대 자본과 권력 시스템에 종속된 하부 구조에 불과함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 드라마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권력을 누군가의 고정된 소유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 조직 내에서 포식자인 방태섭조차 재계와 정치권의 더 큰 자본 흐름 앞에서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체스말에 불과하다. 이양미 또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더 우위의 권력자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처지다. 누군가는 위에 서고 곧바로 아래로 밀려난다. 이 세계에서 권력은 철저히 관계와 상황 속에서 재배치된다.
대중의 우상인 톱스타가 권력자 앞에서 계란을 맞으며 수치를 삼키고, 기세등등하던 그 권력자 역시 더 큰 뒷배에게 머리채를 잡히며 굴욕을 맛본다. 급기야 톱스타가 자신을 짓밟은 이를 건너뛰고 최상위 권력자에게 은밀한 손길을 뻗치는 이 지독한 먹이사슬은, 권력의 천박하고 잔혹한 생리를 서늘하게 조명한다.
살아남기 위해 타협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서로를 짓밟는 이 드라마에서 선악의 이분법은 무의미해진다. '클라이맥스'는 '누가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묻는 촌스러운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이 비정한 구조의 생리를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포식자로 살아남는가'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드라마가 이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매우 적나라하고 영리하다. 성상납, 스캔들, 노골적인 스킨십, 폭력 같은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해 확실하고도 자극적인 충격을 준다. 때때로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주는 강렬한 자극이 결국 이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클라이맥스'는 욕망의 정교한 세밀화다. 각자의 욕망을 좇아 기꺼이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인물들의 아귀다툼은 한 편의 잔혹동화 같으면서도,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비정한 축소판을 마주하는 듯한 서늘한 기시감을 안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누가 최후의 승리자로 남을지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누가 꼭대기에 서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쌓아 올린 탐욕의 탑 위에서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고 어떻게 닳아가는지를 목도하는 일이다. '클라이맥스'가 설계한 이 지독하고도 매혹적인 권력의 체스판. 그 핏빛 여정의 끝자락에 남는 것이 과연 찬란한 영광일지 허망한 잿더미일지 끝까지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