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우' 메릴 스트립의 품격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4.15 09:4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홍보차 첫 내한서 보여준 품위

메릴 스트립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홍보차 첫 내한하여 한국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49년의 연기 생활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1번 후보로 지명되어 세 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린 명배우이다. 메릴 스트립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댓츠 올(That’s All)"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의 회의가 끝날 때마다 미란다 편집장이 던지는 한 마디. "그게 다예요." 짧지만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권력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샤넬 재킷에 에르메스 스카프를 한 패션 아이콘 미란다는 2000달러가 넘는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의 길고 뾰족한 뒤축처럼 예리한 카리스마를 ‘뿜뿜’ 풍긴다.

베테랑 미란다와 신입사원 앤디의 좌충우돌 패션 정복기가 유쾌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가 속편으로 돌아온다. 무려 20년 만이다. 50대였던 메릴 스트립은 70대 중반을 넘겼고, 신입사원처럼 풋풋하고 반짝였던 20대의 앤 해서웨이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영화는 영화 밖에서 흐른 시간만큼이나 세월이 흐른 뒤의 미란다와 앤디를 다시 보여준다. 비록 20년 전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바뀐 게 많지만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의 존재감은 여전해 보인다.

오는 2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두 주역이 지난 8일 내한해 한국팬에게 인사했다. 40대의 앤 해서웨이는 그렇다 치고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메릴 스트립은 세월을 비켜 간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빨간색 정장으로 멋을 낸 그는 여전히 20년 전의 미란다 같았다. 놀랍게도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저의 손자·손녀가 6명인데, 그 아이들이 매일 이야기하는 것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K팝입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한국에 오게 됐는데 비행기에서부터 한국의 풍경을 보고 너무나 흥분됐습니다."

손자가 6명이나 있는 ‘할머니’ 메릴 스트립은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명배우로 통한다.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과 함께 국내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권위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가장 많이 후보로 지명된 배우라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그는 1977년 영화 ‘줄리아’의 단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49년의 연기생활 동안 모두 21번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됐고, 이 중 세 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첫 번째 수상작이 1980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 회사 일에 파묻혀 가정에 소홀한 남편 테드(더스틴 호프만)와 아들 빌리를 남겨두고 ‘가출’해버리는 엄마 조안나 크레이머 역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금이야 위킹맘도 많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지만, 성 역할과 가족의 개념이 틀에 박혀 있던 당시로썬 매우 파격적인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두 번째 수상작은 나치의 아우슈비츠에 수감됐던 악몽이 있는 폴란드 여성 소피의 인생역정을 다룬 ‘소피의 선택’(1982)이다. 메릴 스트립은 간략한 줄거리 한줄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소피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폴란드계 이민자 캐릭터로서 폴란드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해 호평받았다. 캐릭터에 맞게 억양과 목소리, 자세까지 바꾸는 배우로서의 집념이 이때부터 돋보였다. 동료 배우 말론 브랜도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가 아니라 신의 경지라고 해도 부족하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1986년 로버트 레드포드와 호흡을 맞춘 명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까지 1980년대는 그야말로 메릴 스트립의 전성시대였다. 매년 모든 잡지의 커버를 장식했고,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당연히 할리우드에서는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라이벌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은 오히려 더 겸손하고 소탈한 자세로 잡음을 피하고 중심을 지켰다.

세 번째 아카데미 수상은 2012년의 ‘철의 여인’이다. 메릴 스트립은 영국 정치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마거릿 대처 총리로 ‘환생’했다. 실제 대처 총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줬다. "나는 캐릭터를 흉내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했던 평소 그의 연기 지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메릴 스트립이 할리우드 여느 다른 배우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배우 이전에 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거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품격에 있는 것 같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세기폭스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아이템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다. 그러자 메릴 스트립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폭스사의 기부는 품격 있는 행동이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품격에 품격으로 화답한 것이다. 연기력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도 귀감이 됐다. 그는 후배 여배우들로부터 항상 ‘존경하는 배우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메릴 스트립은 가정과 사회에서 매우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1978년 조각가 돈 거머와 결혼해, 2017년 별거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40년간 한 남자와 해로하며 슬하에 1남 3녀를 뒀다. 이혼이나 스캔들이 일상적인 할리우드 사교계에선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

그래서일까. 메릴 스트립은 노년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변신을 주저하지 않는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2008)에 출연해 노래와 춤에 도전했고, 10년 뒤에 속편에 다시 녹슬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넷플릭스 화제작 ‘돈 룩 업’에서의 연기도 매우 인상 깊었다. 속물 같은 미국 대통령 제이니 올린 역을 맡아 노출을 불사하며 블랙 코미디 같은 엔딩을 장식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도 더욱 확장된 미란다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번엔 날카로운 카리스마 대신 진정한 어른의 인간미를 보이지 않을까.

이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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