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 규모의 허리케인 상륙이 예보된 미국 시골마을 애니빌. 주민들이 대피하느라 바쁜 가운데, 얼마 전 엄마를 여읜 소녀와 만삭의 임신부, 위탁 가정의 세 아이가 미처 마을을 떠나지 못한 채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역대급 규모로 세력을 키운 허리케인이 쏟아붓는 폭우와 강풍에 마을 제방을 넘어 바닷물이 몰아친다. 육가공 공장에서 연장근무를 하던 물류트럭이 강한 물살에 휩쓸려 전복되고 탱크로리 속 핏물이 흘러나온다. 바다에서 마을로 들이닥친 황소상어들은 폭우에 고립된 주민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맹렬한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거대한 자연재해 속에서 몇몇 생존자들이 위협적인 상어의 공격에 사투를 벌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래시: 상어의 습격’. 쏟아지는 빗줄기에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인간 사냥에 나선 상어들, 그리고 출산이 임박한 만삭의 임산부까지 긴박한 재해의 현장에서 공포스러운 시간들이 그려진다.
‘스래시: 상어의 습격’은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거두절미, 러닝타임 초반부터 상어를 등장시키며 끝까지 위협적인 상어의 공격으로 밀어붙인다. 과학적, 이론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설정을 꽤 강력하고 진지하게 끌고가는 뚝심을 선보인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은 물바다가 된 마을에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집 안에 고립된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엄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소녀, 약혼자에게 버림받고 홀로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임신부, 위탁가정에서 학대를 받는 세 아이들 등 각자의 사연과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이 맞닥뜨린 위협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연출을 맡은 토미 위르콜라 감독은 ‘바이올런트 나이트’와 ‘데드 스노우’ 시리즈 등으로 B급 장르에 대한 풍부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청불 등급의 잔혹함과 다급한 위기 속에 아이러니한 유머를 배치, 재난영화의 공식을 풍자한다. 신체 일부가 뜯겨 나가고 피가 낭자한 가운데도 툭 나오는 예상 밖의 설정이 웃음을 준다.
완성도 높은 각본이나 개연성을 기대하기는 힘든 작품임에도 ‘스래시’는 오락영화의 본분을 다한다. 등장인물들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고, 이야기 전개는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를 반복한다. 그러나 자연 재난 영화에 충실한 장르적 즐거움과 강렬하고 확실한 재미를 장착하고 있다.
스토리는 뻔한 클리셰가 빈번하고 캐릭터의 깊이는 얕다. 범람한 바닷물을 타고 육지로 온 황소상어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설정 역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요소들이 모여 ‘B급의 미덕’을 충실하게 구현하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는 영화 속 설정을 진지하고 현실감 넘치게 표현한 배우들의 진정성이 큰 몫을 한다.
영화에 몰입을 높이는 배우들의 열연과 완성도 높은 음향효과, 여기에 실제 태풍 속에 서 있는 듯 실감나게 그려진 허리케인 등 흠 잡을 데 없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웰메이드는 아닐지라도, 영화가 애초 목표한 지점, 타깃은 명확하게 잡고 간다는 점에서 ‘스래시’는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 하겠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