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생실습'은 기묘한 코미디다. 수능 귀신에 맞서 죽음의 모의고사를 치른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너진 교권과 사교육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함께 놓여 있다. 한선화는 이 독특한 세계관 한가운데에서 열혈 MZ 교생 은경을 연기했다. 사랑스럽고 능청스러운 얼굴로 웃음을 만들면서도 학생들을 구하려는 인물의 순수한 열정을 함께 쥐었다.
'교생실습'은 열혈 MZ 교생 은경이 흑마술 동아리 소녀들과 얽히며 수능 귀신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하이스쿨 호러블리 코미디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로 독창적인 호러 코미디 세계를 보여준 김민하 감독의 신작으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배우상을 받았다. 극을 이끈 한선화는 이번 작품으로 배우상을 수상하며 연기 내공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가 낯설고 개성 강한 세계관에 처음부터 쉬이 올라탄 것은 아니었다.
"'교생실습'을 많은 분이 가볍고 즐겁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세계관에 진입하기가 조금 버거웠어요. 워낙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대본이라 흥미로우면서도 물음표가 많았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 독특한 세계관 덕분에 조금 쑥스럽지만 재밌게 봤어요. 내가 저 상황에서 저런 말을 했구나 싶어서 웃기기도 했고요."
한선화에게 '교생실습'은 낯설지만 피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대본을 읽을 때 생긴 물음표는 김민하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그의 전작을 보며 빠르게 해소했다. 그는 "은경 역에 저만 염두에 뒀다는 감독님의 믿음이 감사했다. 시나리오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개봉 직전에 받았다. 이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신선하고 독특하게 다가왔다. 단편 '혈세'도 정말 좋았고, 짧은 시간 안에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은 미장센과 연출이 확고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은경은 첫 등장부터 평범한 교생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 "내가 선생님? 개쩌는데?"라는 대사처럼 사명감과 허술함, 열정과 과잉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한선화는 이 캐릭터를 작품의 세계관 안에서 끝까지 믿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야 김민하 감독이 의도한 B급 감성과 인물의 순수함이 동시에 살아날 수 있다고 봤다.
"시나리오에 은경이가 하는 대사 중에 MZ라서 할 수 있는 '뀨, 개쩌는데?' 같은 부분이 있어요. 이런 건 그냥 하면 되는 건지, 어떤 의도로 쓰신 건지 많이 여쭤봤죠. 어떻게 보이면 좋겠는지도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했어요. 세계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는데 감독님이 많이 설명해 주셨어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이 작품을 믿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선화가 붙든 은경의 핵심은 열정이었다. 아직 정식 교사는 아니지만 학생을 귀찮아하지 않고,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 다소 엉뚱한 말투와 과장된 상황 안에서도 은경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기본값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선화는 캐릭터의 톤을 계산하기보다 은경이 가진 에너지를 먼저 믿었다.
"은경은 기본값 자체가 열정이 넘쳐요. 그걸 잡아두고 이 세계관에 빠뜨려두면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모습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교문 앞에서 '내가 선생이라고? 개쩌는데'라고 하는 대사도 이미 감독님이 써주신 힌트였죠. 얘는 이런 인물이라고 믿고 가야 어색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기본값이 워낙 확고하게 잡혀 있어서 그걸 믿고 가면 감독님이 원하신 B급 감성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이 작품은 세계관을 믿고 연기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은경은 엉뚱하고 쾌활한 인물이지만, 홀로 나서서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아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어둠의 세계로 뛰어드는, 영화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책임을 선택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한선화는 그 지점에서 은경에게 공감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실현하기 어려운 정의감이 영화 안에서 유쾌하게 펼쳐진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누구나 한 번쯤 총대를 메고 정의롭게 행동하고 싶은 영웅 심리가 있잖아요. 현실에서 그걸 실현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펼쳐내려는 의도가 좋았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영웅 심리를 가지고 정의롭게 연기해볼 수 있다는 게 재밌었죠."
은경의 순수한 열정은 한선화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여전히 연기가 재밌고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잘하고 싶기 때문에 고민하고, 고민 끝에 장면을 해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익숙한 장르에 머물기보다 아직 해보지 않은 얼굴을 계속 찾아가고 싶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저에게 순수한 열정은 연기 같아요. 연기할 때는 정말 순수하게 열정을 품고 접근하니까요. 연기가 그냥 재밌어요. 제가 나온 걸 보면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동시에 어려워요.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어렵게 고민한 걸 해냈을 때 되게 행복해요. 이게 직업이니까 잘해야 계속 불러주실 수 있고,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동기부여가 돼요."
한선화에게 매 작품은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다. 연기 자체뿐 아니라 감독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 빠르게 돌아가는 현장에 적응하는 태도, 동료들과 호흡하는 방식까지 모두 공부가 된다. '교생실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보지 않은 장르를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 들이는 경험이 그에게는 중요한 자극이었다.
"배우는 항상 배우죠.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연기적인 것도 배우고, 시나리오를 보는 것도 저에게는 공부예요.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도 다 공부고요.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환경을 느끼다 보면 그것도 배움이 되더라고요. 매 작품마다 가르침이 있어요. 이번 작품도 안 해본 장르를 제 필모그래피 안에 갖게 됐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새로운 장르를 해본 경험 자체가 배움이었어요."
현재 출연 중인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작품에서 한선화가 연기하는 장미란은 화려한 배우라는 겉모습과 달리 외로움과 결핍을 지닌 인물이다. 이는 한선화가 실제로 체감해 온 직업적 현실과 맞닿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으로서 조용한 삶과 외로운 이면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미란에게 공감했다.
"미란이라는 인물이 화끈해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유명한 배우로 나와요. 그런데 그런 사람도 사실은 다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운 이면이 있죠. 남들은 알지 못하는 본인의 조용한 삶도 있고요. 겉이 화려하다고 해서 속까지 화려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평범한 인간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걸 마주할 때마다 작가님이 잘 표현해 주셨다고 공감했어요."
그가 '모자무싸'에 깊이 끌린 이유도 대본에 있었다. 보통 대본을 읽을 때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연기할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대본은 한선화에게 위로처럼 다가왔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시끄러운 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대본이라고 표현했다.
"'모자무싸'는 대본이 정말 좋았어요. 이런 느낌을 준 대본은 처음이었어요. 대본을 소설책 읽듯이, 마음의 힐링을 얻듯이 읽게 됐죠. 보통은 제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고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연기로 접근해서 대본을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대본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소설책을 보고 싶듯 꺼내보고 싶은 대본이었어요. 언젠가 여행 갈 때나 마음이 시끄러울 때 다시 꺼내보고 싶어요."
한선화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고정된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으려 한다. 코미디가 잘 맞는다는 반응을 감사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는 매번 조금씩 다르게 해보려 고민한다고 했다. 신을 살리고,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작품 안에서 제 몫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그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교생실습'의 은경 역시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열심히 하니까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르게 해보려고 고민을 많이 해요. 최대한 신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재지 않고 충분히 신이 잘 나오길 바라죠. 그 인물이 잘 표현되길 바라고요. 아직 안 해본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마흔이 되기 전에 30대 때 액션도 꼭 해보고 싶어요."
'교생실습'은 오는 1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