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합행위를 통해 시장질서 파괴의 중대범죄를 저지른 주체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지난달 광복 70주년을 맞아 4대강 공사와 호남고속철도사업 등에서 입찰담합으로 적발된 건설기업들을 대거 특별사면해줬다.
이 조치로 시공능력평가 100위 이내 대형 건설기업 53곳을 포함해 2008개 업체, 192명의 기술자가 행정처분 사면을 받았다. 사면을 통해 해당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판정으로 부과된 부정당업자 제재(입찰참가제한), 영업정지, 업무정지, 자격정지, 경고처분 등에서 해제됐다.
정치권은 물론 중앙부처 내부에서조차 반대했음에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입찰참가 제한으로 인해 공사를 수행할 기업이 없어 국책사업 수행에 차질을 겪을 수 있는데다 입찰제재로 해외 건설시장에서도 수주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실제 해외시장에서 한국 건설기업들이 공정위의 담합제재에 따른 어려움을 겪던 터여서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건설업계는 정부 조치를 환영하며 이전의 불공정 관행을 깊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자정 노력으로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설업계는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에 화답하는 의미로 대형 건설기업들을 중심으로 2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 사회복지시설 지원 등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약속 이행’을 위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번 특별사면에서 입찰참가 제한 해제와 관련, 사면일 이후 일정기간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토록 했다. 이에 따라 해당 건설업체들은 지난 7일 ‘자진신고서’를 취합, 정부에 제출했다.
건설업계는 이 과정에서 지난달 19일 자정결의대회를 통해 약속한 △담합재발 방지 △대표자(CEO) 무한책임 △사회공헌기금재단 설립 등에 대한 업체별 대표자 ‘확인서’를 함께 내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 자진신고서만 제출했을 뿐 대표자 확인서를 낸 기업은 1곳도 없다. 가뜩이나 국내 관급공사 시장이 침체돼 어려움을 겪는데다 1조원에 달하는 공정위 과징금에 해당 발주처에 내야 할 손해배상금까지 감안하면 손실이 막대해 기금 조성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해석에 따라선 ‘돈 내기 아깝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대통령이 공약사항을 뒤집으면서까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업계를 위해 결단을 내렸고 끝까지 이번 특별사면에 반대한 공정위도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를 존중해 관용을 베풀었다. 하지만 정작 수혜를 입은 건설업계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번 특별사면 조치 이전에 건설업계는 “과징금이나 민·형사상 책임까지 논하는 것이 아니다. 건설기업들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입찰참가 제한만이라도 풀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경제도 살아나지 않겠냐”고 읍소했다.
이처럼 용서를 구한 건설업계가 지금은 뻔뻔한 입장으로 돌변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이번을 제외하고도 2000년 이후 3차례나 봤다. 그때마다 건설업계는 자정결의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다시 담합하다 적발됐고 또 다시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사면을 받았다.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건설산업을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업계의 진정성이 필요하다. 또다시 코앞의 위기만 모면하려고 꼼수를 부린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공정위도 핫바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