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공시가 현실화, 31년만의 조세 법정주의

권화순 기자
2020.11.05 06:10

"사실상 증세다."

부동산 공시가격을 10년 안에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로드맵이 지난 3일 확정됐다. 야당 의원들은 "사실상 세금을 더 걷으려는 의도"라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이에 연동하는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도 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강남 아파트 보유세는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지금보다 보유세가 2~3배 올라 수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시가격 현실화로 결과적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증세를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만든 법에 따라 시행한 것이다.

단독주택 공시가격 문제로 뜨거웠던 지난 2018년을 기억해 보자. 당시 재벌가 소유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자 "불공평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고가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을 끌어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인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다.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 공시가격이 적정가격을 반영토록 하는 내용이 법안의 핵심으로, 여야 합의로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1989년 도입된 부동산(토지) 공시가격 제도는 31년간 시세와 무관하게 '정부 마음대로' 책정된 것이 사실이다. 주택 공시제도는 2005년 도입됐는데 역산해 보면 당시 시세 반영률은 20~30%에 그쳤다. 공시가격이 시세와 따로 놀았지만 정부는 2017년까지도 전년도 공시가격에 일정비율만 조정하는 '기계적'인 방식을 유지했다.

필연적으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토지와 주택, 단독주택 등 부동산 유형별로 시세 반영률이 10~2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단독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고가여도 시세 반영비율이 낮아 세금을 덜 냈다. 아파트 보유자가 차별당한 것이다. 시세가 똑같은 1억원 아파트라도 앞집은 공시가격이 5000만원인데 뒷집은 8000만원으로 나오는 일도 많았다.

같은 부동산을 소유했더라도 주택이나 단독주택이냐에 따라, 혹은 같은 아파트라도 고가냐 저가냐에 따라 공시가격이 제각각인 게 문제였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다. 정부는 앞으로 유형이나 가격과 상관없이 시세 반영비율을 90%로 맞추기로 했다. 현실화율 목표 도달 시점은 각 가격이나 유형별로 최소 5년에서 최장 15년까지 속도 조절을 하는 장치를 뒀다.

공시가격은 재산세나 종부세 부과 기준으로만 쓰이는게 아니다. 건강보험료 책정 기준이 되고 기초연금, 장학금 등 복지제도 수급자를 선정할 때도 결정적인 잣대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복지제도 수급자를 결정해야 하는데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공시가격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다.

지금의 공시가격은 '세금은 입법부가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 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 지난 31년간 국토교통부는 행정지침에 불과한 공시가격으로 국민이 내야 할 세금을 사실상 정해 왔기 때문이다. 시세 반영률이 90%로 올라가면 정부의 결정권은 작아지고 국회가 정한 세율이 훨씬 중요해진다. 이번에 공시가격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재산세율도 15년만에 조정됐다. 조세 법정주의가 31년만에 실현된 셈이다.

물론 공시가격 현실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세금 부담 증가 때문이다. 실제 전체 주택 보유자의 약 5%는 집값이 오르지 않더라도 세부담이 늘어난다. 재산세 감면 대상을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려 말하면 비싼 주택을 보유하고도 공시가격이 낮아 상대적으로 세금 혜택을 본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 발표 이후 보유세 부담 증가만 강조되고 그간의 불공정함, 부당함은 쏙 빠졌다. 현실화율을 올려야 했던 애초 취지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보유 자산의 60~70%에 불과한 공시가격을 끌이 올리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언젠가는 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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