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만 오르나, 보증금도 1억→5억… 세입자들 '주거비 폭탄'

배규민 기자
2026.06.10 04:05

다주택자 매도·실거주 확대 등 수급 불균형 심화
공급자 우위 시장 '반전세화' 가속, 임차인 부담↑

전·월세 동반 감소 지역/그래픽=김현정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월세시장으로 몰린다. 문제는 월세 역시 부족하다는 점이다. 임대공급 부족은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A씨는 집주인의 실거주 요구로 기존 거주하던 집을 떠나 다른 월셋집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주거비용 증가를 경험했다. 기존 보증금 1억원에 월세 210만원이던 A씨의 주거비 부담은 새 월셋집에선 보증금 5억원에 월세 250만원으로 뛰었다. 더 큰 문제는 한참 오른 월세가격으로도 적당한 매물을 찾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A씨는 "주변에서 적당한 전세와 월세 매물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며 "조금만 늦었어도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뻔했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매물 감소 배경으로는 다주택자 매도와 실거주 확대, 반전세 전환 등이 꼽힌다. 규제강화로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사례가 늘고 보유세 부담과 정책변화에 대비해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움직임도 구체화됐다. 전반적인 공급감소와 전세에서 월세로의 공급이동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전월세시장 전반의 수급불균형이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집주인들도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체감한다. 서울의 한 다주택자는 최근 월세 재계약 과정에서 2년 전보다 월세를 100만원 올렸지만 임차인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보유세 부담증가에 대비해 월세를 큰 폭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예전 같으면 부담스러운 인상폭이었겠지만 지금은 수요가 많아 계약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현상을 단순한 월세화보다 '반전세화'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조정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광진구 자양동 '더샵스타시티' 전용 100.32㎡는 지난 5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40만원으로 거래됐지만 현재 시장에는 보증금 5억원에 월세 350만원 매물이 나와 있다. 월세 부담 일부를 보증금으로 전환한 전형적인 반전세 형태다. 과거에는 전세와 월세가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됐다면 최근에는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높이는 계약이 늘면서 세입자들의 초기 보증금 부담과 월임대료 지출 부담이 동시에 커졌다.

대규모 신축단지 입주가 시작되면 주변 구축아파트 전셋값이 조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이른바 '입주장'에서도 전셋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사례가 늘었다. 업계에서는 순수 전세매물이 크게 부족해져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전세와 월세는 별개의 시장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세물량이 줄어들면 월세수요가 늘고 월세 부담이 커지면 다시 전세를 찾는 수요가 증가하는 구조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위원은 "전세와 월세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품"이라며 "한쪽 공급이 줄어들면 다른 쪽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세매물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실거주 중심 정책을 강화하고 전세대출 보증규제를 확대할 경우 집주인들이 반전세나 월세를 선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거주 1주택 규제 등이 현실화되면 실거주 목적의 주택보유가 늘어나면서 임대차시장에 나오는 물량 자체가 더 감소할 수도 있다. 남 연구위원은 "매매시장은 구매를 미루는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월세시장은 당장 거주할 집을 구해야 하는 문제"라며 "전세와 월세의 동반 공급부족이 이어질 경우 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욱 불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월세 공급부족을 단기간에 해결할 만한 뾰족한 대책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사를 앞둔 임차인들은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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