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을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 불과 한달 사이 1만건 가까이 불어났을 정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 유예를 연장하면서 이 같은 흐름이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세제 혜택 축소를 앞두고 비거주 고가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 임대사업자의 매도 수요가 몰릴 수 있는 내년 매물 출회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18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10만9374건으로 지난달 18일 9만9379건보다 9995건(10.1%) 증가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도봉구를 제외한 24개 구에서 매물이 늘었다.
증가율은 강동구가 20.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성북구 20.7% △성동구 17.7% △송파구 17.3% △동작구 15.4% 순이었다. 증가량은 강남권이 압도덕이었다. 강남구가 1698건으로 가장 많았고 △송파구 1355건 △강동구 1013건 △서초구 632건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서만 한 달 동안 3685건이 늘었다. 서울 전체 증가분의 36.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강동구까지 포함한 동남권 4개 구의 증가량은 4698건으로 서울 전체의 47.0%에 달했다. 한 달간 늘어난 매물 두 건 중 한 건가량이 동남권에 집중된 셈이다.
빠르게 늘어는 매물과 달리 거래 분위기는 차디차게 식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기인 5월 고점을 찍은 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5월 8983건에서 6월 5305건으로 40.9% 감소한 뒤 7월 5841건으로 10.1% 반등했다. 그러나 8월 거래량은 18일 현재 신고분 기준 3300건에 그친다. 아직 신고기한이 남아 있어 최종 수치는 늘어날 수 있지만 7월 수준을 크게 밑돌 가능성이 높다.
시장은 토허구역 내 실거주 의무 유예 연장이 거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실거주 유예 신청 기한이 내년 말까지 연장되고 임대차 갱신계약 기간도 인정되면서 세입자가 있는 주택의 매도 여건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토허구역에서는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팔려면 임차인과 퇴거 시점을 조율해 매수자가 빠르게 입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세제개편안이 '팔 이유'를 만들었다면 이번 조치는 '팔 수 있는 여건'을 넓힌 것"이라며 "세입자가 있다는 이유로 거래가 막혔던 주택까지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세제개편에 따른 매물 출회 효과가 실제 시장에 나타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제 변화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7년에 매도 물량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제개편안에 담긴 장기보유특별공제 개편과 임대사업자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 축소가 시행되면 2028년부터 일부 보유자의 세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2028년 세제 혜택 축소를 앞두고 매도 의사결정을 마친 비거주 고가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 임대사업자의 물량이 2027년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실거주 유예로 이들 주택이 원활하게 거래되면서 거래 가능한 매물 공급에 일정 부분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거주 요건 때문에 거래가 어려웠던 세 낀 집 거래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도자는 전세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주택을 처분할 수 있고 잠재적 매수자도 늘어나 매물을 회수하기보다 매도를 검토할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거주 유예가 대규모 매물 출회나 집값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무주택자 요건과 입주 후 2년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고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한 임대사업자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어서다.
대출 규제도 변수다. 남 연구원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매수한 뒤 퇴거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경우 상황에 따라 대출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될 수 있다"며 "매물이 원활하게 거래되도록 금융 보완책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와 다주택자의 매도가 늘면 전·월세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 연구원은 "임대사업자와 비거주 주택 보유자, 다주택자의 매도 물량이 집중되면 전·월세 매물도 동반 감소해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 전문위원은 "매물 증가는 가격 상승 압력을 낮추지만 무주택자가 선호 단지를 미리 매입할 수 있게 되면서 매수 수요도 확대될 수 있다"며 "가격을 직접 낮추기보다 거래 가능한 매물의 범위를 넓혀 거래량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