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 복원으로 국내 에너지업계와 은행권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우려가 증폭된 가운데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만나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초 이란 제재를 복원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에 대해서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행사하기로 했다. 한국을 포함한 8개국은 일단 예외 적용을 받지만 미국 제재를 의식한 일부 국내 은행은 국내 거주 이란인의 계좌를 해지해 이란과 외교 마찰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대표단은 오는 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 등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이란 제재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이란을 비롯해 러시아, 베네수엘라, 북한 등을 제재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와 관련해 각국 정부를 초청해 종합 설명회를 진행한다”며 “이 설명회를 계기로 한국 대표단이 미국 정부를 만나 이란 제재와 관련해 추가적인 협의와 후속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합동대책반을 꾸려 미국 정부와 접촉하려는 것은 국내 에너지업계와 은행권에서 이란 제재와 관련한 ‘세컨더리 보이콧’ 우려가 증폭되고 있어서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5일 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한국 등 6개 국가에 대해 6개월간 적용 유예를 인정해줬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회사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지속할 수 있게 됐고 이란중앙은행이 계좌를 개설해준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을 통해 수출입대금 원화결제도 가능한 상태다. 다만 미국 정부가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을 요구하고 있고 예외국 인정 기간도 6개월로 한시라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 국내 정유회사의 이란산 수입 의존도는 13.1%에 달한다.
이란 제재와 관련해 가장 민감한 곳이 은행권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9월말 국내 거주 이란인 고객에게 계좌 해지를 요구했고 지난달부터는 계좌를 해지하지 않은 이란인 고객은 인출만 허용하고 송금 등 기타 거래를 모두 정지했다. 계좌가 해지된 이란인 고객은 국가인권위원회에 KEB하나은행이 “출신 국가에 따라 차별했다”며 진정서를 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이란 국적 민간인의 일상적인 금융서비스 이용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는 공지를 각 은행에 전달한 상태다. 현재 KEB하나은행을 제외하고 다른 은행은 이란인의 계좌를 해지하지는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러나 “이란인 고객에게 자금출처나 용도를 물어보고 계좌를 개설해 주지만 테러 자금 용도인지 아닌지 100% 확신할 수 없고 미국이 문제를 삼으면 언제든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KEB하나은행은 “이란인 고객의 원화·외화 예금거래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미국 법무법인 의견을 근거로 계좌 해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세컨더리 보이콧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한 은행권의 혼란과 우려는 증폭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2005년에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가 북한 거래와 관련해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파산한 전례가 있어 은행으로선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국내 거주 이란인의 은행 계좌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협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이번 협의로 문제가 다 정리된다고 장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합동대표단은 북한 제재와 관련해서는 이번에 별도의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