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치매보험 때문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고 털어놨다. 연초부터 국내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경증치매까지 보장하는 치매보험을 출시하며 열띤 판매 경쟁을 벌이자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설계사들의 요청이 빗발치고 있어서다. 현재 외국계 보험사 중 치매보험 단독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경증치매까지 보장하는 상품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치매만 단독으로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만 팔고 있는데, 국내처럼 임상치매평가척도(CDR) 1단계에 해당하는 수준의 경증 치매까지는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보험사들은 초기 치매인 CDR 1단계에도 최대 2000만원까지 진단금을 주는 상품을 팔고 있다. CDR 1단계는 전화기나 가전제품 사용이 어렵거나 요리 등 집안일을 할 때 장애를 겪는 정도의 증상인 것처럼 가입자가 연기를 해도 판단하기 어렵다. 도덕적 해이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보험사 중증치매 진단 시 종신연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중인데 이 또한 해외에서는 비슷한 사례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해외 재보험사들도 종신연금 지급에 대해서는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해외 보험사들은 경증치매 진단금이나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리스크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품 출시는 검토조차 하고 있지 않다”며 “미국 등 일부에서 장기간병보험(LTC)을 통해 치매를 보장하는 경우는 있지만 단독 보험은 일본 외에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보험사들도 치매보험의 위험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CDR 판정을 받더라도 객관적인 판단이 애매하고 판정에 불복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예상한다. 경증치매까지 보장하는 데 대한 위험률이 높아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커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출시 한 두 달 만에 수 만 건씩 팔려나갈 정도로 시장 수요가 있어 ‘대박 상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판매채널도 전속설계사가 아니라 GA(법인대리점)에 대한 의존도가 커 어느 한 회사가 히트상품을 만들면 위험한 걸 알면서도 따라 만드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이미 자살보험금, 암보험 등과 관련한 분쟁을 겪으면서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단기 실적에 급급해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해 눈 감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위험에 대한 경고등이 커졌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다 철저하게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