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피해자 갈등만 부추기는 실손보험 복마전

김세관 기자
2022.06.23 05:06
김현정디자이너 /사진=김현정디자이너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과거 식민지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이용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이득을 취했다. 이용을 당한 당사자들은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서로의 멱살을 쥐고 신음하면서도 놓지 않는다.

최근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복마전 양상을 보면 이 같은 역사 전개가 머리 속을 스친다. 일부 의료 종사자와 브로커들은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보험사들과 대다수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금 지급이라는 이해관계 속에서 스스로 갈등의 골을 파고 들어가는 형국이 비슷해 보인다.

과잉진료에 의한 실손보험 누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 4000만명이 가입한 '제2의 건강보험'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데 있다. 수년씩 손해보며 물건을 파는 사업가는 없다. 실제로 2010년까지만 해도 30개였던 실손보험 판매 보험사는 막대한 손해율을 견디지 못하고 현재 반토막(15개사)난 상태다.

보험사들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조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실손보험 부문에서만 봤다. 130%가 넘는 손해율이 지속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10년 뒤엔 100조원이 넘는 누적 적자와 160% 이상의 손해율에 직면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손보험 제도가 아니라 보험사 존폐를 우려해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다.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 한 축의 붕괴는 국민들에게 경제적인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도 대다수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매년 인상되는 실손보험료로 인한 부담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지난 5년간 상위 생명·손해보험 5개사의 1세대 실손보험료가 평균 63.6%나 올랐다. 2020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 전체 3978만명 중 약 70%인 2665만명은 실손보험금을 한 번도 수령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 가입자 중 0.27%인 10만7000명은 연간 1000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했다. 높아진 손해율로 오른 보험료를 모든 가입자가 십시일반 나눠서 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험사와 대다수 선량한 가입자 모두 실손보험을 악용한 과잉진료 이슈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측은 직접 계약 당사자다. 가입자들은 보험금 지급에 까다롭고 매년 보험료를 올리는 보험사를 비판하고,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을 의심한다.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따로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 특히 보건당국의 '입김'은 약하다. 당연히 보험업계는 소극적인 보건당국의 자세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스탠스'가 바뀔것 같지 않다. 결국은 근원적이고 촘촘한 그물망이 마련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현재 금융당국은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를 범정부적으로 출범시키고 실손보험의 제도적 모순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회에서는 '보험범죄방지범정부대책 기구' 출범을 논의하며 관련 처벌 강화 방안도 함께 고민 중이다. 촘촘한 그물망 마련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진도가 느리다. 그 사이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와 갈등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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