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요즘,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2018년 명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가 떠올랐다. 추석이 다가와서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등등 그가 칼럼에서 쏟아냈던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 때문이다.
요즘 금융권엔 대출이란 무엇인가, 은행은, 금융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김 교수는 이런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위기 상황에서 제기된다'고 했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는 은행이 위기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적 둔화가 예상되지만 그건 업황의 문제일 뿐 '정체성의 위기'는 아니다.
김 교수는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별한 사태가 벌어질 때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새 정부 들어 이어진 각종 조치들이 대출, 은행, 금융에 대해 이런 질문을 끄집어낸다.
이재명 정부 들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6억원 규제, 7년 이상 장기연체자에 대한 일괄 채무조정 정책 등이 잇따라 발표됐다. 광복절 특별사면엔 5000만원 이하 연체자에 대한 신용사면(연체기록 삭제)이 포함됐다. '과도한 이자놀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생산적 금융도 추진되고 있다.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대출규제는 '갚을 수 있는만큼 빌린다'는 원칙을 흔들었지만 가계부채 관리 만이 아니라 단기적으론 치솟은 집값 안정을 위해, 장기적으론 비정상적인 부동산거래를 떠받치고 있던 금융관행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대책이었다. 장기연체자들의 빚을 탕감하고 연체기록을 지워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도덕적 해이 우려에도 사회 전체로 볼때 더 득이 된다면 국가 지도자가 결단할 수 있다.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자금을 생산적 분야로 흐르게 하자는데 반대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10명 중 1명은 빚을 못 갚을 것으로 보고 9명한테 이자를 다 받고 있는데, 못 갚은 한 명을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 부당이득"이라고 하고 "빚을 다 갚았으면 칭찬해야 하는데 연체 경험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전과자 취급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면 다른 문제가 된다. 은행업의 본질, 금융의 메카니즘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0명 중 1명에게 어차피 떼일 돈이라면 단순 계산으로 은행의 연체율은 10% 정도여도 된다. 0.64%(5월말 기준)에 불과한 연체율이 높다며 은행에 건전성 관리 강화를 주문하는 금융당국은 오버하는 것인가. 연체 기록 관리가 전과자 취급하는 부당한 대우라면 신용도를 정밀하게 평가해 금리를 산정하라는 대출의 기본 전제가 흔들린다. 생산적 금융을 위해 대출이 기본인 은행에 출자나 투자를 강요하면 투자은행이 되라는 것인지, 증권사들이 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뭐가 다르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은행, 보험사 등에 부과되는 교육세율을 두배로 인상한 것은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하는 결정타였다. 교육시설 확충 등을 위한 교육세를 금융소비자가 내는 것은 '수익자와 납세자의 불일치' 때문에 조세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교육세 대신 금융권에 맞게 서민금융 등을 위한 특수목적세를 신설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문제는 건너뛰고 느닺없이 세율인상만 발표했다. 세금을 더 걷는 이유에 대해선 "금융사들이 최근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반면 다른 업종들은 굉장히 어려운 만큼 금융사들이 좀 더 부담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증세에 그럴듯한 논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이쯤되면 금융은 정부의 ATM(현금인출기)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대가 바뀌면 사회가 요구하는 은행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논리와 근거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존재의 이유를 의문케 하는 논리라면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행이란 무엇인가.